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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나누고 즐기는 살림의 풍류, 보자기 아티스트 이효재

“제가 58년 개띠예요.”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 누구도 그녀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할 터. 세월의 풍파를 홀로 비켜간 듯 보이는 영원한 소녀, 보자기 아티스트 이효재 씨가 <허참의 토크 & 조이> 녹화장을 찾았다.


‘어머 선생님!’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할 수준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보자기 아티스트’이자 ‘친 환경주의 살림꾼’으로 오랜 시간 주부들의 워너비로 자리매김 해온 그녀, 이효재. 그녀가 털어놓은 인생 이야기와 보자기에 대한 사랑은 녹화 현장에 있던 모든 이의 눈과 귀를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보자기의 변신은 무죄!!
와인 두 병과 사각 티슈를 앞에 놓고 펼쳐진 이십여 분 간의 마술 쇼! 손바닥만 하게 접혀 있던 보자기와 그녀의 손길만 있으면 세상 모든 물건이 자기 자신보다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듯 했다.
“선물 하나를 줘도 그냥, 이거 가져! 하면 멋이 없잖아. 보세요, 보자기 두 장만으로 이 선물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값진 선물이 되는지.”

보자기를 이리 접고 저리 펴고 또 그 위에 꽃 한 송이까지 꽂아 보니, 이것 참, 선물을 받아도 펴보는 게 아까워 두고두고 간직해야할 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즉석에서 볼레로, 클러치, 에코백으로 변신 가능한 색 고운 보자기의 색다른 매력!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빌게이츠까지, 그녀가 보자기로 포장한 선물을 받아든 해외 유명 인사들이 선물보다 먼저 포장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예로부터 보자기는 복을 싸고 복을 불러오는 물건이었어요. 어머니께 물려받은 한복집을 운영할 때는 그저, 물려받은 것이기에 아무런 목표 없이 그 일을 했지만, 보자기를 만지기 시작하면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해보니, 의지가 생기고 목표가 생겨서 참 좋아요.”


다른 누구의 삶을 따라하거나 흉내 내는 대신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 그런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어머니와 남편이었다.


효재처럼 사는 법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처럼 손이 야무진 한복집 여사장이었다. 또, 힘든 바깥일을 하면서도 아버지께 내드릴 상차림 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살림의 달인인 ‘우리네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의 야무진 살림 솜씨와 손재주를 물려받아, 한복집을 운영하며 예쁜 가정을 꾸리겠다는 소박한 삶을 꿈꾸던 그녀. 그녀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 건, 남편 임동창 씨를 만나면서 부터다.

 

“결혼 전에 세 가지를 저한테 부탁하더라고요. 첫 번째는 날 그냥 내버려둘 것. 두 번째는, 원할 때는 언제 건 차가운 물을 줄 것. 세 번째는, 먹기 위해서 돈을 벌지는 않겠다는 것. 그 때 알았죠. 다른 부부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는 틀렸구나 라는 걸요.”


서울 생활이 싫어 시골에서 제자들과 함께 피아노를 치며 사는 남편과 보자기를 싸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아내. 남들 눈에는 별나 보일지 몰라도, 그녀는 이 삶을 운명이자 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엔 다들 물어보기조차 껄끄러워했는데 요즘은 그러던데요? 이게 복이래요. 남편 밥 차려주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좋으냐고요.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거죠. 저희는 그렇게 기찻길의 상행선과 하행선처럼 서로를 보며 나란히 달려가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효재의 살림은 풍류다.
그런 인생의 깨달음 덕분일까. 외국인 관광객들이 매일 같이 몰려들어 구경하다 차까지 대접받고 간다는 그녀의 집안에는 구석구석 자연의 멋이 넘쳐흘렀다. 청소기가 싫어 빗자루를 쓰고, 깨진 그릇은 땜질을 해 재활용 하고, 정원의 예쁜 돌과 이름 모를 풀들을 집안 모든 곳에 갖다놓는 이효재 만의 독특한 살림법! 보기에는 참 예쁘지만 보통 주부들에겐 이런 살림이 고된 노동이지 않겠냐는 MC의 질문에 그녀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나누세요. 들기름을 여섯 통 짰다면 한 통씩 이웃과 나누시고, 뭘 하든 이웃과 함께 하세요. 그럼 이웃에서도 내 빈 손에 무언가를 또 들려주겠죠? 그렇게 나누고 내 집에 누군가를 초대해 함께 하다 보면, 살림이 즐거워진답니다.”


가끔은 소녀처럼, 가끔은 또 어머니처럼, 가방 한 가득 들어있던 보자기만큼이나 다채로운 매력을 뽐냈던 그녀와의 두 시간. 몸으로 터득한 인생의 지혜를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그녀는 그렇게 또 다른 만남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미희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