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판
며칠 전 한 직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직원의 말이 이랬습니다. “그 사람은 일하는데 괜히 피곤하게 해요.” 웬만하면 다른 사람 비평을 잘 하지 않는 직원이라 그의 반응이 뜻밖이기도 했지만, ‘평판이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괜히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그 인물은 같은 회사 사람은 아닙니다. 저도 이전에 업무 관계로 종종 만나던 인물인데 굳이 특징이라면 약간 찡그린 것 같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편의상 그 사람을 A라고 칭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일하는 데 괜히 피곤하게 한다”는 평가를 비롯해서 “학업(일)에 뜻이 없다”든가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든가 하는 평가들이지요. 그래서 인사철이 되면 A는 ‘영입 리스트’가 아니라 ‘방출 리스트’의 윗줄에 올라가곤 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특별한 흠결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능력도 남들만큼은 가지고 있고 학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인물이 못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는 주변 사람들에게 “일하는데 괜히 피곤하게 한다”는 공통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우선 일하기를 싫어하고 가급적 일을 맡으려 하지 않아 ‘뺀돌이’라는 말을 듣거나 맡은 일을 제때 해내지 못해서 부서장들은 그에게 일 맡기기를 겁을 내지요. 비슷한 경력을 가진 사람보다 승진이나 평가에서 항상 밀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또 외부 사람들과 일할 때는 자기보다 낮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찍어 누르려 하며 거만하게 행세하여 뒷소문이 동료들에게까지 들려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상당한 근무 경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서 저 부서의 ‘말단’급 일을 하고 있습니다.
A와는 전혀 반대의 사례도 있습니다. 그를 B라고 부르겠습니다. B는 도대체 찡그린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도 직장에서의 고통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의 대표 이미지는 단정함이었습니다. B에게 일을 맡기면 그 업무에 관해서는 잊어버려도 되었습니다. 그가 확실히, 깔끔하게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이런 믿음은 한두 번의 경험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열 번 스무 번의 경험으로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겨난 것이지요. B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 깔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그래서 농담이나 허언도 하지 않았다는 거지요. 업무에서 흠을 찾기가 힘들다보니 이런 말도 되지 않은 단점(?) 찾기에 나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일이 너무 몰려서 그의 입술이 한 달 가량 부르튼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무리한 것 아니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그는 전형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도 많지 않은데 표시만 내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직장에서의 사람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분류가 된다고 합니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시키는 일을 넘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리고 시키는 일도 못하는 사람, 이렇게 세 그룹 말입니다. 물론, 조직에 필요한 사람은 두 번째 그룹의 사람이며, 두 번째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미래가 결정되겠지요.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일을 겁내지 않고 피하지 않고 즐기는 사람입니다.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들이지요. 신기한 일은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서로서로 평가를 하고 평가를 당한다는 겁니다. 경험에 의한 꼬리표라고 할까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라는 평가가 나온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평가가 모이면 평판이 됩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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