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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엘리베이터 앞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제가 사는 아파트 건물에는 엘리베이터 두 대가 있습니다. 한 층에 네 가구가 살도록 설계되어 있고, 최근 추세대로 가구당 식구도 많지 않은 터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은 상당히 수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용객이 많지 않으니 거의 기다리지 않고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유일한 예외는 아침 출근 시간대입니다. 퇴근 시간은 대부분 늦은 시간대라 기다리지 않고 탈 수 있지만 출근 시간은 다릅니다. 아침 8시에서 8시 30분이 거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간이면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서 만원을 기록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두 대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 엘리베이터가 빨리 도착할지 마음속으로 ‘견적’을 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쪽 엘리베이터는 17을 기록하고 있고 다른 쪽 엘리베이터는 10을 기록하고 있던 어느 날 3층에 사는 필자는 10을 기록하는 쪽으로 옮겨 섰습니다. 이변이 없다면 10을 기록하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빨리 내려오겠지요. 그런데 예상을 벗어나 10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8층에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6층에 섰습니다. 8층에서 문이 열리고 주민이 타고 문이 닫히고 다시 6층으로 이동하고 문이 열리고 주민이 타고 다시 문이 닫히는 동안 17층에 있던 엘리베이터는 쑤욱 3층까지 내려와 문이 열렸습니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엘리베이터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입니다. 그것은 개인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각 층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층에 네 가구가 사는 가정에서 어느 날 남학생이 10분 늦잠을 잤고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 변비 때문에 화장실에서 5분 더 지체하게 되었다면 3층에서 기다리는 필자에게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층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먼저 3층에 도달하겠지 하고 그 앞으로 자리를 이동했지만 뜻밖에 먼저 도착한 엘리베이터는 17층에 있던 엘리베이터였습니다.


운전을 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요. 특히 약속 시간은 늦을 것 같고 교통은 혼잡할 때 이리저리 차선을 바꿔보고 온갖 요령을 피워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보다 뒤에 있던 차량이 5분쯤 지나다 보면 내 앞에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는 겁니다. 그 차는 안달을 피우지도 않고 차선을 지켜가며 왔을 뿐이고 나는 이리저리 온갖 재주를 부리며 마음 졸이며 왔는데도 결과는 그 다른 차가 더 낫다는 겁니다. 마음 졸이며 재주부렸던 것이 아깝고 후회스럽기조차 합니다.


이런 일이 엘리베이터와 운전뿐이겠습니까? 살아가면서 이런 일은 부지기수입니다. 직장에서 잘나가던 어떤 이가 갑작스런 사건사고로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고 평범하게 보였던 이가 큰일을 맡기도 합니다. 사원 급 피디였을 때 직접 제작한 드라마는 거의 빛을 보지 못했던 피디가 부장, 국장이 되면서 관리자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뒤에 처져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더 잘나가는 것 같을 때, 나는 불안합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빨리 나가나 하고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는 것처럼 직장에서 요령을 부려보기도 합니다. 상사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쓰기도 하고 업무를 할 때 무리수를 써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도 뜻밖에 승진은 다른 동료가 먼저 하는 경우도 왕왕 생깁니다. 빨리 올 것 같던 엘리베이터가 다른 층에서 타는 사람 때문에 더 늦게 도착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또 그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처럼, 때로는 우리의 행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의 변수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경우는 수없이 많습니다. 말 그대로 그것이 ‘운명’인지 모르지요.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운명’에 맡겨야 합니다. 늦게 간다고 신세한탄을 할지 모르지만 상대편 엘리베이터가 8층, 6층에서 선다면 내가 탄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인생에도 변수가 있듯이 건물에도 변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변수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백 퍼센트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가 건물에도 있지요. 그것은 계단입니다. 계단을 걸어가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것은 순전히 나의 힘으로 통제가 가능합니다. 일정한 속도로 걸어갈 때 1층에서 20층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아무도 중간에 누군가 개입해서 속도를 통제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엘리베이터도 고장이 나서 멈춰서기도 하고, 계단에도 뜻밖의 장애물이 있어 우리의 갈 길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는 내 뜻대로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계단은 가능하다는 겁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엘리베이터 탄 사람처럼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조바심하는 경우가 있지요. 안달을 해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탔다고 생각하는 순간 운명은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언제 어느 층에서 엘리베이터는 서게 될지 모르니까요. 이럴 때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간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속도조절을 한다는 거지요. 나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내가 속도 조절을 하고 쉬어가는 타이밍을 스스로 결정하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에서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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