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자르기 말 듣기
며칠 전 저녁 모임이 있었습니다. 예닐곱 명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일 년에 서너 번씩 모이는 사람들인데, 모처럼 만난 자리여서 그랬는지 안부 인사에서부터 최근의 정치 상황, 건강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인만큼 주제도 다양했지요. 이런 자리에 참석하다 보면 몇 가지 유형으로 사람들이 분류가 됩니다. 마이크를 많이 잡고 모임의 중심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 있나하면 있는 듯 없는듯하다가 자리를 떠나는 사람도 있지요. 보통 연장자나 이른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좌장으로 자리를 이끌어가게 마련입니다만, 타고난 화술로 자리를 주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대화를 주도해나갔고 다른 이들이 가세하면서 대화가 이어졌지요. 그런데, 그날 제 눈에 특별하게 비친 현상은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겠지요. 모임 중에 A가 자녀 교육에 대해 말을 하던 중에 음식이 들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중단되었고 음식에 대한 설명을 종업원으로부터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 전에 이야기를 하던 A는 잊혀진 채 B가 새로운 화제로 ‘마이크’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B의 말이 끝나고 자연스럽게 제가 A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주제를 다시 환기시킨 것이지요. 독자 여러분도 아마 한 번쯤은 그런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신나게 말을 이어가던 중에 음식이 들어오면서 말이 중단 되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때의 그 썰렁한 기분을 말입니다. 실제 그날 말이 잘렸던 A의 경우에는 베스트셀러 저자로서 상당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신의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룬 그에게 ‘스토리’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먼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요.
영어의 관용구에 “말을 잘라서 죄송하지만(Sorry to interrupt)”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필자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관찰한 그들의 대화 문화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날 때, 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불가피하게 말을 끊어야 할 때 쓰는 표현이 ‘Sorry to interrupt’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말을 끊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야만적’으로 보는 경향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통령 후보를 뽑는 텔레비전 토론을 보면 그들도 서로 ‘마이크’를 잡으려고 말을 자르기도 합니다만, 이런 경우에는 토론 진행자가 절대권한을 갖고 토론을 진행해 나갑니다. 자신들끼리 말로 싸우다가도 진행자가 중단시키면 중단하는 것이 그들의 규칙입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통이 ‘법치(Rule of Law)’고 보면, 대화에서의 법, 즉 규칙은 반드시 상대방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을 어기면 야만스럽거나 미개한 것으로 보고 이 법을 지키면 ‘교양인’으로 본다는 것이지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손을 들어 발표권을 얻고 말을 하는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말을 잘라서 죄송하지만” 또는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같은 말이 우리의 전통적 언어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걸 보면 끼어드는 경우가 없었다는 걸까요? 아니면 끼어드는 것이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거리낌 없이 남의 말에 끼어들었을까요? 아마도 유교 문화에서는 어른이 주로 말을 하고 아랫사람은 듣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발표를 할 권리는 스스로 얻었다기보다 스승(어른)이 지시를 했을 때 주로 받았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문화의 차이이겠지요. 이른바 ‘서양 문화’와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자유토론이 가능해졌을 터인데, 공식 토론에서는 시간 배분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여전히 ‘끼어들기’ 현상이 왕왕 보이곤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결국 ‘n분의 1’ 법칙이 아닐까 합니다. 세 사람이 모여 30분 동안 대화를 한다면 한 사람이 10분씩 정도 얘기하는 그 ‘n분의 1’ 법칙 말입니다. 간혹 이야기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경험으로 보면 그렇게 조용한 사람에게도 질문을 던져보면 엄청난 스토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곧 명절이 다가오면 각종 모임이 많을 텐데 사람들의 대화 모습을 한 번 관찰해보세요. 그리고 한 번 정도는 작심을 하고 스스로를 한 번 관찰해보세요. 나는 잘 듣는 사람인가, 다른 사람의 말을 자르지는 않는가, 적절하게 다른 사람의 말에 응대를 하는가, 긍정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가 등을 말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는 한 방법이라고 하니 말이지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