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임의 시대
“첨엔 ‘걸바’여서 관심 갔는데 ‘갈비’야.” “‘공홈’에서 ‘광클’해주세요.” “‘쌤’, ‘급질’ 있어요.” 이 문장의 뜻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앞에서 언급한 세 문장을 풀어서 쓰면 뜻은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걸어 다니는 바비인형’처럼 예뻐서 관심이 갔는데, ‘갈수록 비호감’이야.” “‘공식 홈페이지’에서 ‘미치도록 클릭’해주세요.” “선생님, ‘긴급한 질문’ 있어요.” 한 줄에 쓴 세 개의 문장을 풀어쓰니 두 줄이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줄임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작은 문자메시지였습니다. 전화기에 말을 하듯 문자로도 용건을 빨리 전달하려다보니 자연히 낱말을 줄여 쓰게 되었지요. 게다가 단문과 장문의 경우 통신사에서 부과하는 요금에도 차이가 납니다. 텔레비전에서도 시청자들의 문자메시지를 소개할 때 “단문은 00원, 장문은 000원”, 이런 식으로 보통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소개의 말을 합니다. 청소년들의 경우, 손가락이 기민하게 움직이고 또래의 트렌드에 따라 가려다보니 줄임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격친’이니 ‘강추’니 하는 등의 줄임말을 사용하는 횟수는 줄어들지만 또 다른 형태의 ‘줄임 문화’에 길이 들게 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같은 사회관계망(SNS, Social Network Service)이 발달하면서 만들어진 문화인데,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길을 걸으면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짧은 메시지들이 주로 올라가지요. 페이스북이나 페이스북 친구,트위터 친구라는 말보다 ‘페북’이니 ‘페친’이니 ‘트친’이니 하는 말이 더 친숙하게 들릴정도이니 이 정도면 줄임말의 문화는 이미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나 봅니다.
그런데, 줄임말의 문화는 생각의 길이마저 줄여버린 것 같습니다. 트위터는 초기에한 메시지 당 140 글자만 올릴 수 있도록 구조를 짰습니다. 물론 메시지를 이어서 쓰면 무한정 쓸 수 있지만 사람들은 140 글자라는 짧은 메시지에 길이 들여져서 긴 글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긴 메시지는 ‘도배질’이라고 비하적으로 표현이 되는데, 실제 긴 메시지들은 ‘도배질’일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에 대한 음해성 메시지를 올릴 때 ‘도배질’을 이용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페이스북도 메시지 하나의 공간을 한정해 두고 있지요. ‘단문’이라는 구조는 크게 두 가지 결과를 낳았습니다. 첫째,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140자만 쓰면 되니 글 쓴다는 것이 식은 죽 먹기가 되었지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잡다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올리게 되었다는 얘깁니다. 둘째, 문학이 시들게 되었습니다. 짧은 문장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긴 문장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저 지루할 뿐입니다. 책이 팔리지 않고 독서 인구가 줄어든 것이 인터넷과 SNS의 발달 때문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한 때 장편 소설의 한구절을 인용해서 SNS에 띄우는 것이 유행한 적도 있었지요. 책의 전체 내용은 관심이 없고, ‘멋진 문장’ 퍼 나르는 재미와 그에 대한 반응이 즐거울 뿐입니다.
줄임말과 단문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 건지, 그 의미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을지 모릅니다. 더 쉽게 생각하고 더 쉽게 결론 내는 인간들을 양산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됩니다. 매일 일기를 써야하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검사를 맡던 시절도 있었지요. 지금 아이들은 얼마나 일기를 쓰고 있을까요? 온종일 무언가 ‘페북’에 남기고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생각을 트위터에 올려버리는 시대에 깊은 생각, 숙고라는 것이 젊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문학은 죽었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 왠지 씁쓸하고 서운하고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제가 ‘구시대 인물’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