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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보 스

 

보 스

새해가 언제 오나 했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새해 첫 번째 칼럼에서 보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보스’라고 하면 무슨 이야기인가 하겠는데, 상사, 직장 상사 이야기입니다. 직장 생활 30년을 하면서 수많은 보스를 만났습니다. 말 그대로,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빼빼한 사람, 보통인 사람, 얼굴이 넓적한 사람, 얼굴이 좁은 사람,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부지런한 사람, 게으른 사람, 말이적은 사람, 말이 많은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 목소리가 작은 사람, 남자, 여자,..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은 보스들이 있었는데, 생각나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후배들에게 무서운 보스였습니다.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만난 부장이었습니다. 기자들의 근무 시간이 길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길 줄은 몰랐습니다. 여덟시가 되어도 아홉시가 되어도 퇴근하라 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열시가 한참 넘어서야 ‘들어가’ 한 마디가 떨어졌습니다. 물론 그 자신도 퇴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8시에 시작된 일은 밤 10시가 되어야 끝이 났습니다. ‘쌍팔년도’ 시절이라 시간외 근무수당,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후배들은 그에게 꼼짝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일을 시켰고, ‘노는 꼴’을 보지 못했고, 일이 마음에 들지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둘째, 그들은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지는 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1987년 무렵으로 생각됩니다.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서울 올림픽에 몇 개국이 참가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던 때였습니다. 냉전이 붕괴 되면서 ‘중공’, ‘소련’, 이런 말이 입에 오르내렸고, 몇 년 되지 않아 그들과의 외교 관계 수립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두루마리 텔렉스로 외신 기사가 타전되던 때였는데, 국제부 기자들은 영어로 타전되는 두루마리 기사를 잘라서 중요 기사가 있으면 한국어로 번역해서 기사로 쓰곤 했습니다. 그 부장은 부원들이 잠시라도 쉴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두루마리 외신 기사를 살피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련, 88 올림픽 참가 결정’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엄청난 기사였습니다. 부장에게 보고했더니 흥분하면서 동시에 종이에 쓱쓱 ‘소련, 서울 올림픽 참가 결정’이란 자막을 뽑더니 편집부에 직접 갖다 주고 텔레비전에 속보 자막을 띄우라고 했습니다. MBC의 대 특종이었습니다. 외교 관계가 수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소련이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던 거지요. 개인적으로는 입사 1년 만에 첫 특종상을 받게 됐습니다. 1988년 7월 3일, 미국 해군 함정 빈센스 호에서 발사된 포격으로 이란 여객기가 페르시아 만에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등 290명이 모두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자연히 국제부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부장은 부원들에게 이란 국영텔레비전에 계속해서 전화를 걸게 했습니다. 보통은 한두 번 하다가 전화 연결이 안 되면 10분이든 20분이든 쉬었다가 다시 하지만 그 부장은 제일 어린 기자 두 명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걸게 했습니다. 전화 다이얼을 돌리느라 손가락에 물집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MBC는 페르시아 만에 떠있는 승객 시신의 모습을 국내에서는 처음 입수해 특종 보도했습니다.


셋째, 그들은 후배를 성장하게 했습니다.무섭게 후배들을 단련시킨 결과, 후배들은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초기 무서웠던 선배들의 ‘조련’을 받은 후배들은 곳곳에서 실력을 발휘하게 됐습니다. 대충 마음좋은 선배를 만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살았다면 대충 살아가는 인생으로 끝났을지모릅니다. 승부욕이 있고 지고는 못 사는 선배들 덕분에 MBC는 1980년대, 1990년대 최고의 방송사였습니다. MBC 기자들은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고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어느 대기업에도 지지 않았습니다. MBC 카메라가 도착하지 않으면 기자회견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무섭고 승부욕이 강하며, 후배들을 성장하게 하는 보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당시에 그들은 인기는 없었습니다. 무서웠기 때문에 많은 후배들이 피했고, 승부욕이 강해일을 많이 시켰기 때문에 후배들이 싫어했습니다. 성장하게 되는 결과는 5년에서 10년이 지난 다음에 나타나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저 무섭고 싫기만 했지요. 그들 자신도 일만 했기 때문에 건강을 잃기도 했습니다. 회사로서는 그들로부터 이익을 얻었지만 그들에게 직업 인생은 ‘남는 장사’만은 아니었던겁니다. 그런데, 후배들에게 그들은 최고의 선배였습니다. 단련 없이 성장이 없고, 인생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시대가 달라졌고 옛날방식이 지금도 금과옥조는 아닐 것입니다. 다른 형태의 리더십이 더 우대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그 선배들의 그 리더십은 ‘보스’라는 말에 가장 걸맞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은 현재 보스이거나 아니면 미래의 보스입니다. 당신은 어떤 보스입니까?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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