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만난 한 사람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어느 도시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교수입니다. 도시라고 하기도 다소 쑥스러운 도시의 외곽에 자리 잡은 미술관은 건물 자체가 예술이었습니다. 미술관으로 이름 붙여진 공간은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본관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건물은 미술관과 카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창틀과 기둥은 대부분 옛 건물에서 나온 목재들을 재사용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넓은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연못 벽에는겹쳐 놓은 단지 두 개의 틈으로 폭포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며 뒷마당으로 나가면길 쪽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원이 나타납니다. 잘 손질된 잔디가 깔린 정원 곳곳에는 백일홍과 채송화, 봉숭아 등이 피어있습니다.
뜰 가운데는 어린이 키만큼 자란 능수벚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아래에는 이런 내용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능수벚나무는 동강 하정웅 선생님이 일본에서 손수 가져와 기증하셨습니다. 김포공항 식물 검역소와 검역 절차를 마친 후 공항 관리 식물원에 1년간 보관 및 관찰 과정을 거쳐 00 식물원에 식수 되었습니다... 이 꽃을 보는 모든 이들이 선생님의 정성을 깊이 새겨 생의 아름다움을 꽃 피우기 바랍니다.” 미술관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건축물은 컨테이너 관입니다. 컨테이너를 서너 개 포개고 세우고 해서 현대적인 건물로 재탄생시켰는데, 비싼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어 묘안을 짜낸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미술관에서 압권은 ‘아랫마당’에 자리 잡은 한옥입니다. 이 지역을 방문하면서 며칠 묵게 되는 손님들을 위해 만든 숙박시설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한옥 호텔인 셈이지요. 다 쓰러져 가던 폐가를 사들여서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숙박시설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방 안에는 옛 절구를 들여놓아 차를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고, 뒤 창문을 열면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집을 감싸는 것이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그녀는 창의적인 예술가로만 결론 났겠지요. 이야기는 지금부터입니다. 처음 미술관 자리를 물색하면서 비싼 땅값에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마침 죽록원 부근에 땅이 나왔는데, 땅이 아니라 쓰레기장으로 불러야할 만큼 동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답니다. 5톤 트럭으로 20대를 실어 날랐다고 하니 짐작할 만 하지요. 미술관을 개관하면서 관장은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마을과 함께 가는 미술관이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겠다는 거였지요.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 마을의 주민들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녀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을 모집했지요. 물론 교육비는 무료였습니다. 처음에는 미술관에 오기도 꺼려하던 할머니들을 설득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미술관으로 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표현에 서툰 할머니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지요. 처음에는 단순한 선 긋기 수준에 불과하던 할머니들의 그림은 점점 다양한 표현을 하면서 왕성한 자기표현을 하는 단계까지 발전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들은 스스로를 ‘화가’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동네를 한바퀴 돌게 되면 담벼락에 붙어있는 할머니들의 다양한 타일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예쁜 꽃과 함께 문패를 만들어 놓은 집도 있고, 손자 손녀의 얼굴 모습과 함께 그들에게 보내는 다양한 메시지도 있습니다. “이샛별, 이슬 사랑한다.” “비 오고 해뜬께 무지개도있는 거여.” 말하자면, 미술관 관장은 동네 풍경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색을 하게 됩니다. 사색을 하면서 나쁜 생각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자기표현을 하게 되면서 주민들은 동네에 꽃을 심고, 집 벽을 꾸미게 됐습니다. 처음에 미술관에 길을 넓히라,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던 이들이 이제는 미술관에 와서 스스로 꽃을 심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풍경만 바꾼 것이 아니라 심성에까지 꽃을 피웠다고 할까요. 사람의 힘이 이렇게 위대합니다. 그녀가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고 카페만 열었다면 동네와는 유리된 ‘장사꾼’에 그쳤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원했고, 그 꿈은 마을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지요. 남에게 평생 부담이 되고 신세를 지는 사람,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립해서 사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미술관장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신혁명가이겠지요. 7월에도 대전MBC의 토요장터는 계속됩니다. 농민과 시민이 직접 만나도록 하는 토요장터는 단순히 물건만 오가는 장터는 아닐 것입니다. 대전MBC 토요장터에서 옛 추억을 찾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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