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유럽 특파원을 지낸 선배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파리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는데, 특파원으로서 기본 업무는 당연한 것이지만 방문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파리는 에펠탑과 몽마르뜨르 언덕, 베르사이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등 일생에 한 번은 가보아야 한다는 관광지를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요즈음은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추세라 배낭 하나 메고 관광지의 뒷골목까지 훑어보는 이들도 많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은 큰마음 먹고 나서야 하는 일이었습니다.프랑스는 영어권이 아니라 여행객에게는 더욱 불편한 곳이지요. 웬만한 곳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발짓을 다 했던 기억이제게도 남아 있습니다.
파리에서 3년을 머무는 동안 그 선배는 방문객을 수 십 차례 맞았다고 합니다. 공항 픽업에서부터 호텔 이동, 식사 대접, 기본적인관광 명소 안내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투어가이드 역할을 수도 없이 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특파원으로서의 업무가 기본이라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 일을 해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기야 안내도 한 두 번이지 방문객들에게는 난생 처음인 ‘낭만의 도시 파리’이지만 그 선배에게는 ‘보고 또 보는 일상의 장소’에 불과했으니까요.
루브르만 하더라도 ‘모나리자’와 밀로의 ‘비너스’ 상 등 수많은 미술품을 간직하고 있고 오르세 미술관에는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기’, 로댕의 ‘지옥의 문’이 전시되어 있으니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니 방문객들에게는 신나고 즐거운 여행이었겠지요. 그런데, 손님을 치러본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공항에서 손님을 맞는 일에서부터 치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항공기가 예정된 시간에 도착할지 미리 점검을 해야 하고 도착 시간에맞춰 손님을 태울 자동차가 가장 빠른 동선안에 대기하도록 해야 합니다. 항공기가 도착 예정 시간보다 늦게 오면 좀 더 기다리면 그만이지만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게 되면 손님을 기다리게 할 수 있으니 그런 비상사태가 발생하도록 하면 안 됩니다. 공항에서의 손님맞이에서부터 식사 대접, 관광지 안내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도 업무 때문에 차질이 빚어질 때도 왕왕 생기게 됩니다. 그럴 때는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현지 가이드에게 대신 부탁을 해놓았습니다.
언젠가 그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가이드에게 다 맡겨놓고 식사 한 번 정도 대접하면 되지 않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선배가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나한테 파리는 내가 사는 도시였어. 그렇지만 그들에게 파리는 평생 한 번 마음먹고 오는 ‘꿈의 여행’이었어. 그리고 그들이 파리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나였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여행이 악몽이 될 수도 있고평생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어떻게 내가 대충 할 수가 있었겠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어.” 그들에게 ‘한 번 뿐인 여행’을 평생 기억에 남도록 하기 위해 그 선배는 최선을 다한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파리를 거쳐 간 모든 ‘손님’들이 그 선배에게는 평생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선배가 기쁠 때는 함께 축하해 주었고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함께 슬퍼해 주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한 번 뿐인여행’에서 최선을 다해 대접해 주었던 것이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지요.
누군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나하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지 않을 때는 ‘귀찮은’ 손님, 불청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재미있는 것은 굴곡이 많은 인생길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의를 다해 그들을 대했다면 그들 역시 나에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인생은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방송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불특정 다수에게 그냥 뿌리는 것 같지만 상대편은 알고 있지요. 그들이 최선을 다한 것인지 아니면 귀찮게 생각하며 대충 때운 것인지를. 그 증거를 계량화한 것이 시청률이겠지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분명 ‘화제작’들은 운이 좋아 대박이 터지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생에 한 번뿐인 2015년 여름휴가도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보내시고 사무실에서 웃으면서 만나겠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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