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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그녀와 그녀

 

그녀와 그녀

2015년 12월 12일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야기입니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운전대를 잡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에서 여성이 사상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뿐입니까? 지방의회 의원으로 20명이나 당선됐다고 합니다. 지방의회 의원이 모두 2,106명이니까 여성 의원 20명이 무슨 대수냐고 하면, 그건 사우디아라비아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여성이 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체포되어 투옥까지 당할 수 있는 나라가 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인 보수주의를 상징하는 메카에서도 여성 의원이 탄생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외출을 할 때는 몸 전체를 가리는 아바야에 머릿수건(히잡)을 써야하고 남편이든 아들이든 남성 ‘보호자’가 반드시 동반을 해야 합니다. 대학을 가려고 해도, 여권을 발급받을 때도, 해외여행을 할 때도 반드시 남성 보호자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수영장에서 수영은 고사하고 수영복을 입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성 차별은 이 지역의 요르단, 이집트는 물론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예멘보다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사우디 여성들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왔습니다. 유튜브에는 여성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몰래 운전을 한 동영상을 촬영해 업로드한 ‘용감한’ 여성들의 모습이 올라와 있습니다. 지난 2013년에는 운전을 할 권리를 요구하며 ‘운전 시위’에 나선 여성 14명이 당국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2011년에는 제다에서 운전을 하다 체포된 여성이 태형을 선고받는 일도 있었지요. 대학을 가려면 남성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더 많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오늘날 여성 참정권을 현실로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성 투표율은 82 퍼센트로 44 퍼센트의 투표율을 기록한 남성들의 두 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정부보다 시민이 더 보수적인 나라로 불립니다. 통상 시민들이 개혁을 요구하고 정부는 서서히 개방·개혁을 하는 것이 대부분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들이 더 보수적이라고 합니다. 이슬람 율법을 확대해석하여 여성의 권리를 제한해 왔지요. 이번 선거에서도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아이들은 누가 키우냐며 볼멘소리를 하는 남성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여성의 권리가 일부 신장된 것은 이제는 고인이 된 압둘라 전 국왕 덕분입니다. 점진 개혁파였던 압둘라 국왕은 지난 2011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나마도 2015년으로 연기됐다가 마침내 올해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요. 사우디아라비아의 ‘그녀’들이 껑충 뛰어오르기를 응원합니다. 언젠가는 사우디의 국무총리가 여성이 될지도 모릅니다.


올 연말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여풍’의 주인공들이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대기업의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임원이 탄생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여성 임원들의 존재가 더 이상 화들짝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연말 대기업 인사 때 여성 임원이 탄생하면 여전히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되지요. 올해는 한화손해보험의 김남옥 상무가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올해 60세의 김 상무는 중졸의 학력을 가지고 한화손보 최초의 여성 임원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수보험설계사에게 주는 ‘보험왕’ 타이틀을 11번이나 거머쥐었다니 ‘영업의 달인’인 그녀가 임원이 된 것이 때늦은 감이 있기도 합니다.


22살에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간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사촌 언니의 말 한마디였다고 합니다. “집에만 있으면 누가 널 알아주겠냐”라고 했다니 아마 김 상무의 실력을 일찌감치 알아챘던 모양입니다. 김 상무는 제2, 제3의 김남옥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합니다.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스스로에게 한계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 짓는 것은 바로 이 말이었습니다. “저는 실천을 했으니까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많은 ‘김남옥’들은 아직도 여성이라는 틀 속에 갇혀 살기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참정권을 가진 그녀들은 이제 첫 번째 빗장을 열었습니다. 여성에, 중학교 졸업에, 은퇴할 나이의 김남옥 상무가 1 퍼센트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많은 여성들도 힘차게 비상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그녀와 대한민국의 그녀, 그들에게 꿈은 무한대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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