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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교통 천국

교통 천국

 

일정 때문에 전국을 다니다보면 한국이 얼마나 교통의 천국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사통팔달 뚫려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고속 열차를 타게 되면 순식간에 도시를 잇는 그 속도의 빠름에 놀랍니다. 고속열차의 경우에는 서울에서 대전까지가 한 시간이고 대구까지는 약 두 시간, 부산까지는 세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부산에 사는 사람이 서울까지 출퇴근도 가능합니다(그런 사람은 없겠지만).우리 국민들에게는 편리한 교통이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 세계 많은 곳에서는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다음 국제사회는 이라크에 대해 전면 금수제재를 가했습니다. 무기 제조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화학제품이나 기계류 반입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아기 분유까지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유해 화학 분말을 분유로 위장해서 이라크로 들여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유엔은 이라크에 대해 전면 비행금지제재를 선언했습니다. 군사용 정찰기 등을 허용하게 되면 반군들의 위치를 파악하여 그들에 대해 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취재를 위해 이라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웃나라인 요르단에서 육로 편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까지는 육로로 천 킬로미터에 조금 모자라는 960 킬로미터 정도 되었습니다. 암만에서 바그다드로 들어가려면 단단히 채비를 갖춰야 합니다. 비자나 현금 같은 필수 준비물은 기본입니다. 입국자를 철저히 통제하는데다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비자와 현금이 이라크 여행자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지요.


출발 당일에는 아침 일찍 빵 가게를 들렀습니다. 전쟁 중인 이라크에서 빵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음식이었는데, 빵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으니 요르단에서 미리 준비해 가야 했던 겁니다. 중동에서 빵은 ‘호부즈’라고 해서 넓적하고 얇은 밀가루 빵인데, 피자를 만드는 도우 크기와 비슷합니다. 칼국수를 하기 위해 밀어놓은 것 같은 얇은 밀가루 반죽을 큰 간장독처럼 생긴 화덕에 구워내는데 금방 구워내면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입니다. 암만에는 이라크 여행객을 위한 빵공장이 몇 군데 있었는데, 새벽 4시면 벌써 여러 명의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자와 현금과 빵을 챙겨 새벽 5시에 국경으로 출발하면 운전기사는 오전 8시쯤 시골 어느 동네에 차를 세웁니다. 도로가 매끈하지 않다보니 길은 울퉁불퉁, 세 시간을 달려도 진도는 별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여행객을 위한 조그만 식당에서 호부즈에다 계란 프라이, 그리고 오이를 썰어 넣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중동에서는 빠질 수 없는 ‘차이’를 곁들이지요. 뜨끈뜨끈한 차와 함께 먹는 샌드위치의 맛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훌륭한 아침 식사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출발. 점심시간 무렵에야 국경도시 루웨이시드에 도착합니다. 북한 때문에 대륙으로 가는 길이 단절되어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경이 어떤 곳인지 실감하기 어렵지만 중동 나라 사람들에게 국경을 넘는 것은 대단히 익숙한 일입니다. 국경 검문소에서 출국 도장을 받고 반출 금지 품목이 들어있는지 일일이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여행객 한 사람 한 사람 큰 여행용 가방을 열어놓고 일일이 뒤져보는데, 운이 나쁘면 국경에서 벌써 두세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행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시간은 더 걸리겠지요.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데 이라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겠나 싶겠지만 항공편은 없고 생업 때문에 국경은 넘어야 하고, 그래서 한창 전쟁일 때를 제외하고는 국경은 언제나 붐볐습니다.


간신히 요르단 쪽 검문소를 통과해 50 킬로미터쯤 더 가면 사담 후세인의 대형 초상화가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었지요. 이라크 땅입니다. 이라크 쪽에서도 지루한 입국 절차를 거치는데 특히 통신 수단을 많이 챙겼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가급적 큰 대형 여행가방을 가지고 갔었는데, 온갖 잡동사니 물건을 어지럽게 구겨 넣고 한 귀퉁이에 위성전화를 몰래 싸 넣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이라크에는 호텔 교환을 통해서만 국제 통화가 가능했고 이럴 경우 긴급 상황이 발생해도 본사에 기사를 보낼 수단이 전혀 없었습니다. 위성전화는 필수장비였고, MBC가 우리나라 언론사 가운데서는 가장 먼저 인말샛 위성전화를 구입한 걸로 기억이 됩니다.


위성전화는 요즘 나오는 노트북 컴퓨터의 대여섯 배가 넘는 큰 사이즈였는데, 주로 옷가지들로 둘둘 말아 ‘위장’을 했습니다. 한 번은 검사에서 들통이 났는데,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주위 사람 몰래 ‘뇌물’을 찔러주고 문공부에다 신고하고 맡겨놓겠다고 맹세까지 하고난 다음에야 위성전화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문공부에 신고하지 않고 호텔 베란다에서 몰래 위성전화를 쓰다가 정보국 요원들에게 들켰는데, 다음날 결국 공보처 사무실에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후세인 정권 말기에는 통신이 낙후된 탓인지 관리들의 충성도가 약해져서인지 문공부에 신고를 하지 않고도 호텔방에서 몰래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 국경에서 바그다드까지의 도로는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위험해졌습니다. 공습으로 도로 곳곳이 파괴되고 육교가 무너지면서 웬만한 자동차로는 이동하기도 어려웠지요. 미국의 지엠씨가 이동 수단으로 한창 인기를 끌었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7~8시간에, 운이 나쁘면 10시간이 더 걸려 바그다드에 도착했으니 암만에서 바그다드는 기본 20시간을 잡아야 하는 장거리 여행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워싱턴까지 비행기로 13시간이니 대륙을 건너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암만-바그다드 간 여행에 써야했습니다. 그러면 암만에서 바그다드 간 항공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요? 한 시간입니다. 그러니 20시간에 이르는 암만-바그다드 육로 여행 시간은 말하자면, 평화와 전쟁 간의 시간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한국에서 여행을 하는 것은 저에게는 문명의 여행이며 감사의 여행입니다. 전쟁이 없어 감사하고 도로에서 총 맞을 염려가 없어 다행이며 단시간의 여행이어서 감사한 여행입니다. 물론 시간이 너무 단축되는 바람에 ‘대전발 0시 50분’ 시대에 맛보던 대전역 승강장에서의 가락국수 맛을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차 시간이 5~10분 정도 되니 그 사이 승강장에서 뜨끈뜨끈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전신이 흐뭇해지는 기분이었지요. 이제 그것도 역사가 되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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