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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학습과 봉사

 

학습과 봉사

 

지난 주말 저녁 자리에서 있었던 대화입니다.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출세했다’는 소리를 들었고 부유한 부모에게 태어난 여인을 만나 결혼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화 중에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변호사님은 평생 좋은 환경에서 살았으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은 안 했겠습니다. 저는 요즘 나이 먹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도 한 때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쓴 책도 찾아서 읽었고 공자의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주로 귀족들이 인생에 대해 공부를 했지요. 그들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소수의 귀족을 위해 일을 했고 귀족들은 그들이 생산한 걸로 먹고 입으며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가 귀족들의 전유물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철학과 천문학이 발달했지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공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부모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자녀들입니다. 특히 자의식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청년기에 이르러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지요. 문학과 철학을 찾게 되는 시기가 이 시기입니다. 그러다가 취업을 하게 되고 가족 부양의 의무를 행하면서 그들은 ‘학습’을 중단합니다. 깊이 생각할 여유를 잃어버린다는 얘깁니다.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다시 학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은 ‘은퇴’와 함께 옵니다.


“은퇴는 참으로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의무적인 삶을 살다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시기가 마침내 온 것입니다. 저는 공부를 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퇴를 하면 인생에서 종말이 왔다고 생각하면서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주말 주중 할 것 없이 대한민국의 산들은 형형색색 등산복을 차려입은 이들로 들끓습니다. 은퇴를 하면 생산을 할 시기가 끝이 났으니 더 이상 자신의 삶이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스 시대에는 귀족만 할 수 있던 공부를, 이제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서양에서는 이런 사고방식이 비교적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 칼리지 같은 곳에서는 육십, 칠십이 넘은 사람들이 무언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수업을 듣기도 하지요. 봉사를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큰 박물관을 가면 안내 데스크에는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 앉아 박물관 내 위치를 알려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동네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이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많습니다. 주말의 대학 강의실이나 구청, 동사무소에도 강당이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냉난방 비용 정도를 지원하면 됩니다. 평생 남을 위한 삶을 산 사람들이 이제 강단에 서서 그들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전자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일생을 통해 배운 경험과 지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겁니다. 외교관으로 일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해외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전달합니다.


“배운 사람들은 행동이 달라집니다. 배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행동의 양태가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듭니다. 못 배워서 몰랐던 사람들의 행동과 배운 사람들의 행동은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인생 2막이 또 다른 생산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한 쪽에서는 이전 그리스의 귀족들이 했던 것처럼 학습을 하는 삶입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봉사를 하는 삶입니다. 집에서는 ‘언제 나가나’ 눈총을 받으며 어딘가로 나가주어야 하는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고 밖에서는 천덕꾸러기 노인 신세가 되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배우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그만큼 더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면 또 그만큼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학습과 봉사’, 이것이 우리의 노년기를 흐뭇하게 바꾸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는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는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봉사 활동을 하면서 삽니다. 죽을 때까지 이런 식의 삶을 계속할 것입니다.”


삶을 보는 전혀 다른 태도가 그의 말에서 느껴졌습니다. 배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행동하는 양태가 그 나라의 문화를 만든다, 참으로 맞는 말이지 않습니까? 배운다는 것은 학위가 아니라 무언가를 생각하고 안다는 뜻입니다. 좁게 생각하지 않고 더 넓게 본다는 말이겠지요. 이번 한 주는 삶의 방식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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