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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두드린 돌다리도 다시 한 번, 체크 또 체크∼

그 친구, 참 꼼꼼한 일꾼∼ (feat. 이상욱 PD)
이종섭 FD(Floor Director의 줄임말)는 방송국에서 방송 준비를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스튜디오 녹화 시 현장 관리와 진행, 자료 필름 챙기기 및 각종 잔심부름도 그의 몫이다. 따라서 FD의 다른 호칭은 만능일꾼이다.


이 FD는 중부대학교 방송영상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신문사를 거쳐 2014년 대전MBC와 인연을 맺었다. 첫 직장 이야기를 묻자 내뱉지 않으려 노력해도 한숨부터 나온다.

“처음엔 영상물 제작과 편집을 맡았었는데 갈수록 기사 취재까지 겹쳤어요. 업무에 대한 경계도 없어지고 기사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생활이 반복됐어요. 아, 내 적성은 아니구나 싶어 전공 교수님께 상의 드렸더니 방송국 일을 추천해 주셨어요.”


방송국은 전공과 연계된 곳이지만 ‘처음부터 배우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성실히 이른 새벽에 출근하고 딱히 정해지지 않은 퇴근 시간까지 묵묵히 자기 일을 찾아 했다. 한순간의 방심이 방송 사고로 이어지는 현장에서 침착하고 꼼꼼한 그의 성격은 FD 일과 잘 맞았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

 

 

엉덩이로 이름 쓰기도 불사했던 <허참의 토크&조이> 사전 녹화 현장


“<허참의 토크&조이>는 녹화 전에 방청객 모습을 먼저 찍어요. 박수 치는 장면이나 웃는 모습도 그 중 포함되는데 제가 그걸 유도해야 하거든요. 일명 사전MC 역할을 해야 하는데 남을 웃기는 재주가 통 없어서 매번 땀을 뻘뻘 흘리고 내려와요. 엉엉.”


이 FD는 우는 시늉을 하며 원망스레 덧붙인다. 인터넷을 다 뒤져 선보인 개그에 영혼 없이 하.하.하. 웃던 그들이 허참MC 한마디에 빵 터지더라고.
“물론 클래스의 차이죠. 허참 선생님이니.(웃음) 그래서 좀 더 사전 준비에 신경 쓰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토크쇼의 대가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니까요. 지난주 녹화는 정말 하얗게 불사르고 내려왔어요. 엉엉.”


다시 조용히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이 FD. 사연인즉 방청객 표정은 마오리 전사처럼 굳어 있었고 이 FD는 이들을 즉시 하회탈로 만들어야 했다. 준비한 깨알 개그도 밑천이 보이고, 식은땀은 등골에 송글송글 맺혔다. 뭐라도 해보라는 이상욱 PD의 지시에 ‘에라 모르겠다∼’ 싶어 엉덩이를 쭈욱 내밀고 궁서체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도 안 한다는한다는 엉덩이로 이름쓰기. 스물아홉, 고이 간직해온 그의 엉덩이에 우리 아주머니들, 쓰러지셨다. 클래스의 차이를 몸개그로 극복한 순간이다. 조곤조곤한 말투에 숫기 없는 이 청년에게서 어떻게 그런 슈퍼 파워가 솟았을까 싶었지만 방송 사고에 대한 질문에서 의문이 풀렸다.


“기상 캐스터의 마이크가 꺼진 채 방송 나간 적이 있어요. 본인이 사고를 냈다며 속상해했는데 전 제 잘못이라 생각했어요. ‘한 번 더 체크할 걸’ 하며 후회했죠. 남들에겐 근사해 보이지 않더라도 엔딩 자막 속 제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 때문에라도 실수 없이 잘 하고 싶거든요.”


허참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누군가는 채널을 돌리고 누군가는 TV 앞을 뜨는 프로그램의 말미. 인사와 함께 순식간에 지나가는 스태프 자막 중, 부모님 눈에는 자식의 이름 석 자가 가장 커 보일 터. 그래서 대충할 수 없다. 부모님 얘기에 멋쩍은 듯 웃어 보인 그는 다음 방송 준비를 해야 한다며 파꽃처럼 쏟아지는 첫눈 사이로 겅중거리며 사라졌다.


짬 날 때 마다 그가 즐긴다는 루어 낚시와 풋살처럼, 세심함과 과감함이 공존하는 이종섭 FD. 다음주 <허참의 토크&조이> 녹화 때는 어떤 비장의 무기로 방청객의 반응을 이끌어낼지 궁금해진다.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