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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세계 과학의 미래를 고민하다

 

 

평소 대덕특구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과학기술로 혁신을 만들고 이를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모색하는 세계과학정상회의가 대전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에 설렐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OECD 본부가 있는 유럽이 아닌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고, 우리 제안으로 아세안 국가까지 참여해 57개국 과학기술 장차관 회의로 격상됐다는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 특히, 대전MBC는 과학정상회의 두 달 전부터 매주 한 차례씩 일상생활의 과학 원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는 ‘톡톡 과학’ 기획물을 뉴스데스크에서 송출했던 터라, 기대감이 더욱 높았다. 닷새 간 계속되는 과학회의의 첫 출발은 제레미 리프킨의 기조강연이었다. 엔트로피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3차 산업혁명을 제창했던 그는 ‘과학과 기술이 인류를 위한 여정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열린 협동 체계를 마련하고,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기후 변화 등 인류에 불어 닥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의 초국가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석학의 통찰력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만큼 예리하고 또 여운을 오래 남겼다.


영화 ‘마션(Martian)’의 기술 고문을 맡은 미 항공우주국 데이비드 밀러 박사의 강연도 인상 깊었다. 소설 같은 일로 여겨졌던 화성 탐사선이 성공했듯 영화 속에 나오는 화성 정착생활도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언젠가는 가능하다고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물론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2021년 달 탐사선 발사를 목표한 우리나라 과학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새겨들어야새겨들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2013년 두 번의 실패 끝에 성공적으로 발사된 나로호도 떠올랐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아론 치에하노베르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과학 기술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들려줬다. 의학도에서 생물학자를 진로를 바꾼 자신의 사례를 들며, 돈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일하며 느끼는 성취감과 행복이라고 말했다. 감동적이었다. 적성과 재능 대신 돈, 학벌, 권력을 자연스럽게 권유받는 것이 우리 사회가 아닌가? 그 순간만큼은 강연에 참석한 청소년들의 눈빛에 꿈과 희망이라는 반짝거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과학 정상회의의 핵심은 ‘대전선언문’이었다. OECD 34개 회원국을 비롯해 57개 나라 국제기구의 대표단이 앞으로 10년간 세계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결정한 그 대전선언문이 가장 중요했다. 과학 분야 국제 수장들은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이야말로 고령화와 전염병 등 전 지구적 도전 과제에 대한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개방형 과학의 촉진과 차세대 생산혁명을 이끌 수 있는 정책개발도 주문했는데,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포용성이라는 가치를 도입한 것은 이전까지의 과학기술 선언문과는 다른 대전선언문만의 독특한 부분이었다.


이처럼 주요국 과학 수장들이 대전 선언문을 통해 큰 길을 제시하자, 회의 마지막 날 국내 과학기술인들은 과학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욱 연구에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다짐으로 화답했다. 또, 청년과 여성 등 각계 대표들이 모인 과학발전 대토론회에서는 더딘 경제성장과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대변되는 미래 사회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창의적 과학 인재를 양성하자는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세계과학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우리나라가 얻은 것은 많다. 첫째, 개발도상국에서 경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과학기술 외교 분야에서도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둘째, 대전선언문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서 국정의 중심을 과학기술에 둘 수 있는 동력을 마련했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석학들과 다양한 과학 기술인들의 대중강연을 통해 과학과 사회가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에 투입되는 국가 재정이 국민 세금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의의 최대 수확은 국민 공감대 형성과 소통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 관심 많은 한 사람으로서 이번 과학 정상회의가 한 차례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과학기술인, 국민들이 과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촉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병권 기자 | 보도국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