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자리에서 한 교수를 소개받게 되었는데, 연세가 드신 분이라 그분이 앉아 계신 상태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는 자리를 떠 서 그분이 일어난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한 달 뒤쯤 그분을 우연히 마 주쳤습니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 하고 지나쳤다가 되돌아가서 인사를 하게 되 었습니다.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 분의 키 때문이었습니다. 앉은 상태에서 인 사를 했을 때는 그가 꽤 작은 사람이라고 생 각했습니다. 마른 체구 탓인지도 모르겠습니 다. 여하튼 10분가량의 첫 만남에서 그는 저 에게 키가 작고 우울한 눈빛의 지식인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키가 상당 히 큰 편이었습니다. 180센티미터에 가까운,한국 남성으로는 비교적 큰 키였고 우울하게 보였던 인상도 나중에 다시 만나고 보니 꽤 유쾌한 성격이었습니다.
이렇듯, 첫인상은 어떤 인물에 대해 그릇된
정보를 주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 사
람을 단 10분 만났는데도, 그 사람은 왜소한
체구에 우울한 성격의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데 그친다
면 그나마도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특정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확신으로 전달한다는 것입니
다. 때로는 판단이 팩트로 변신을 해서 전달
되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의 만남에서 형성
된 첫인상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다른 사람
에게 전달하고, 또 그 사람이 복수의 타인에
게 정보를 이전한다면 왜곡된 정보가 사실이
되어 확산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한 사람에 대한 인상 비평이라면 다
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피해가 덜하
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것
이 언론의 문제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기자
가 짧은 경험과 지식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
근시안적 취재를 한다면 큰 키의 사람을 작
은 키의 사람으로 보는 것과 같은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보기에는 키가 작
았고 왜소한 사람이었으며 우울한 인물이었
지만 실제 그 사람은 키가 컸고 스포츠를 좋
아하는 쾌활한 성격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일반인이라면 잘못된 판단은 여파가 작지만언론의 경우에는 시청자들에게 그릇된 정보
를 전달함으로써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고,
그릇된 결론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비유
적으로 특정인에 대한 인상기를 언급했지만
사안이 안보와 관련된 문제라거나 국가적으
로 중대한 문제라면 어떻게 될까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결과는 국가와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어 져야 합니다.
"내가 보고 있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보가 광속도로 전달되는 인터넷의 시대입
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SNS(사회관
계망) 없이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시대이
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바다에서 수많은 정보가 떠다닙니다.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정보
들도 실제 거짓 정보일 때가 많습니다. 앉아
있을 때 키가 작다고 생각했던 이가 실제로
는 큰 키의 사람일 수 있는 것처럼, 특정 시점
에 본 왜곡된 정보를 진실이라고 주장하며
확산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인
줄 알고도 퍼뜨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의도와 목표를 가진 경우입니다.
어느 언론학자는 “미디어는 어떤 생각을 하
게(what to think)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
에 대해 생각을 하게(what to think about)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론이 보도하
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
한 사람도 있습니다. 흔히들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이라는 언론의 기능에서
프레이밍(framing)과 프라이밍(priming)을
이야기합니다. 최근에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낙태 문제를 태아생명권 관점에서 볼
것인가 산모의 선택권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것이 프레이
밍의 사례입니다. 또 주로 선거시즌에 언론
이 사회의 부정부패에 대한 보도를 많이 한
다면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청렴성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청렴한 후보에
표를 던질 것입니다. 반면,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보도를 집중적으로 하면 후보의 청렴성
보다 경제 문제 해결에 능력을 가진 후보에
표를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프라이밍의 사례가 되겠지요.
키가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가
앉아있었고, 그의 상체만 볼 수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인상과는 달리, 우
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물론 사람의 키라는
이슈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내가 보고 있
는 것,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때로는 고도의 전문가가 프레이밍
과 프라이밍이라는 기술을 사용하며 우리의
판단까지 조종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을 알면
서도 속는 경우가 있는데, 아예 염두에 두지
않으면 고스란히 속으면서 세상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자신은 똑똑한 관찰
자라고 생각하지만 속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속지 않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대전MBC사장 /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