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2003년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개시되고 몇 달이 흐른 시점에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입국 수속을 하러 가는데, 군복을 입은 미군 서너 명이 군 배낭을 메고 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미국 시민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미군들을 향해 뜨거운 박수와 함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시민들의 얼굴에는 경의와 함께 환한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남녀 미군들은 시민들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습니다. 저에게 그 모습은 이례적이면서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군인’이란 두려움의 대상이자 왠지 모를 무법적 권력을 연상시키는 한국 특유의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바리’라는 비속어를 거침없이 쓰는 것도 힘없는 시민이 과거 역사에 담긴 비극을 풍자하는 최소한의 방식이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저 없이 일어나서 박수를 보내는 장면, 지나가는 군인들에 대한 적나라한 경의의 표현을 목격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로 미국에서 군인을 대우하고 예우하는 것은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비즈니스 좌석에 빈자리가 있는데, 군인이 이코노미석에 탑승했다면 그 비즈니스 좌석은 군인에게 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일을 두어 차례 목격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고 나를 지켜주는’ 유니폼 직업에 상당한 경의를 표한다는 생각입니다. 군인, 경찰, 소방대원과 같은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때 중요한 자리에 착석해서 대통령의 소개를 자주 받는 사람들도 그들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왜 유니폼에 경의와 찬사를 보낼까, 저는 이것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미국인 지인에게 질문을 했더니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이런 취지의 답을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과 미국 국민을 위해서 목숨을 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니폼’에 담긴 의미를 절묘하게 표현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요. 목숨을 건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삶처럼 의미 있는 것이 없고, 생명처럼 귀한 것이 없는데,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말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우리처럼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입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지키고 시민을 지키며 미국의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거는 직업을 택한다는 말입니다.
"목숨을 걸고 나와 나라를 지켜준 이들에 대해
경의를 바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얼마 전에 한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Warfighters, 戰士>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실종된 해군 특수부대원을 구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작전 수행 중 여러 명이 사망했고 단 한 명만 생존했는데, 그 생존 군인을 구출하기 위해 네 명에서 여섯 명의 육군 특수부대원들이 투입됩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거는 처절한 작전 과정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는데, 적에게 생포되어 포로로 잡혀있던 부상 해군 특수부대원은 결국 구출이 됩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메시지는 그가 남긴 말에 담겨 있습니다. “살아 있으면 미국의 군인이 저를 구하러 올 줄로 확신했어요.” 구출 작전에 투입된 대원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출하는 것처럼 내가 잡혔을 때도 누군가 나를 구해줄 겁니다.”
미국이 군인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은 미군 유해 송환의 역사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6.25전쟁 중 8만3천여 명의 미군이 실종됐고, 그 가운데 5천5백여 명은 북한에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은 북한과 유해 송환 협정을 체결하고 지속적으로 유해를 송환받아왔습니다. 북한은 1954년 2천2백여 구의 유해를 송환했는데, 미국은 1988년, 1996년, 2011년까지 유해 송환 협상을 벌여 자유를 지키다 스러져간 자국군의 유해를 되찾기 위해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1991년 발발한 걸프전 전사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은 지난 2009년 걸프전 첫날 추락, 사망한 미군 전투기 조종사 스파이커 해군 소령의 유해를 18년 만에 발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군은 2003년 이라크를 점령한 뒤 바그다드 인근의 묘지를 발굴하고 50곳의 병원과 감옥을 수색했지만 스파이커 대령의 유해를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수소문 끝에 베두인족이 사막에 묻었던 그의 유해를 찾아내서 1991년 사망한 스파이커 대령의 유해가 18년 만인 2009년에 미국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나와 나라를 지켜준 이들에 대해 경의를 바치는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유니폼, 제복이 갖고 있는 의미와 그 제복에 경의를 바치는 그들이 부러운 것은 저 뿐일까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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