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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지도자와 비전

지도자와 비전

며칠 전 어느 대학교의 행사에 갔습니다. 그 학교는 식품·조리과로 잘 알려진 학교로, 그날 행사는 프랑스의 유명한 조리학교와의 제휴를 기념하는 세미나를 시작하는 행사였습니다. 어느 정도 규모의 행사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행사장에 들어갔다가 수십 명의 외국인이 대화를 주고받는 데서 우선 깜짝 놀랐습니다. 대전에서도 국제 행사가 많이 열리는 만큼 외국인들이 참석하는 행사가 또 하나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지만 행사의 열기가 뜨거운 것이 두드러졌습니다. 미국은 전통적인 우방국이라 미국 대표의 참석은 물론이고 독일과 프랑스, 핀란드,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4개 대륙에 걸쳐 12개국으로부터 수십 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이 학교를 둘러볼 기회가 30분 가량 있었습니다. 캠퍼스의 오전 시간은 분주했습니다. 학기가 새로 시작된 것이 얼마되지 않은 탓인지 학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함께 약간의 흥분도 엿보였습니다. 학생들은 바쁜 발걸음으로 교실을 찾아 발길을 옮기고 있었고 환경미화원들은 제각기 담당 구역에서 쓸고 닦고 하면서 하루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수많은 외국인 학생들과 교수들이었습니다. 얼핏 봐도 외국인들로 보이는 미국계, 유럽계는 물론이고 외모로는 구분이 안 되는 학생들이 중국어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벤치에 앉아 수업을 기다리는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이곳까지 유학을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솟아올랐습니다. 한류의 확산으로 한국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그래서 한국 유학생이나 여행객이 늘어났다고 해도 지방 도시까지 이렇게 많은 유학생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답은 그 학교의 이사장에게 있었습니다. 20~30년 전쯤 그는 해외여행을 하다가 조리학과에서 미래를 찾았다고 합니다. 당시 한국은 배고픈 단계에서 한 단계 올라서긴 했지만 여전히 먹고 마시는 데 신경을 쓸 만큼 여유는 없었습니다. 음식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지 미각을 만족시키는 행위는 사치로 여겨지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는 먹고 마시는 행위가 우리삶에서 기쁨을 주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미리 보는 행위’를 ‘비전’이라고 하지요. 그 비전을 가지고 그는 학교에 조리학과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조리, 또는 요리라는 것은 ‘아줌마’들의 몫이었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요리, 맞벌이 부부를 위한 요리 등을 소개하면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요리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요리프로그램이 각광을 받았던 때이지만 요리는 여전히 ‘생존’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미리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비전을 가진 인물을 지도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그 이사장은 선진국에서 외식산업이 발달한 것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요리가 산업으로 성장할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견대로 한국에서는 ‘먹방’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쿡방’과 여행 프로그램은 요리가 산업의 한 분야를 차지하게 된 증거가 되었습니다. ‘먹고 살만하다’고 할 때 먹고 산다는 것은 생존을 의미합니다. 한국은 이제 먹고 사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먹고 사는 것을 지나 즐김의 시대,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3포 시대’, ‘N포시대’인데 여유 많은 소리 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습니다. 불황 속에서도 해외 여행객은 매년 늘어나고 있고 외식산업 역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와 함께 그 학교의 조리학과도 계속 성장해 나갔습니다. 우물 안에서는 우물의 입구만큼만 하늘을 볼수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와 크기를 알려면 자기가 속한 사회로부터 벗어나봐야 압니다. 그 이사장은 해외를 다니면서 자신이 경영할 학교가 어떻게 해야 생존을 넘어 도약을 하게 될지를 고민하고 살폈습니다. 한국에서 서열을 자랑하는 대학교들 사이에서 미래 가치를 높이려면 그 학교만 가지고 있는, 자랑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요리와 조리에서 미래를 보았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고 그 가치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세계화’라는 구호가 대한민국에서 보편화되기 훨씬 전에 그는 국제교류가 지방대학의 활로를 열어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한국이 선진국들에 유학을 보낸 것처럼 한국의 성장 모델에서 영감을 얻은 제3세계 유학생들이 한류의 바람을 타고 한국으로 몰려들 것을 미리 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학교를 경영하는 재단 이사장들의 ‘갑질’ 행태를 고려하면이 학교 이사장의 결정은 사뭇 대조적입니다. 


‘미리 본다는 것’, 예견하는 것이 비전입니다. 지도자는 미래를 미리 보고 거기에 맞춰서 길을 닦는 것입니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미래에도 생존하고 번영하려면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길을 트느냐에 따라 그 길은 벼랑길이 될 수도 있고 탄탄대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리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비전을 가진 인물을 지도자라고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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