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번 버스
‘240번 버스’라는 말이 언론사에 기록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2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240번 버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시작돼 24시간 텔레비전 뉴스로 확장·확대 재생산된 사건의 내막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4살 어린이가 버스에서 내렸다. 어머니가 버스 기사에게 아이만 내렸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버스 기사는 이를 무시하고 아이 어머니에게 욕설을 하고 그대로 버스를 출발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이 사실이라면 버스 기사는 비인간적에다가 비윤리적이고 직업의식조차 실종된 사람이 됩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글이 올라오자마자 글은 즉시 사회관계망, SNS를 통해 순식간에 퍼 날라졌고 이를 인용한 보도전문채널이 CCTV 화면과 함께 사건을 보도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방송들은 질세라 ‘평론가’들을 출연시켜 ‘문제 운전기사’에 대해 화제성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운전기사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이 폭발하면서 청와대 게시판에까지 처벌을 요구하는 요청이 올랐다고 합니다. 파장이 커지자 서울시는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반전은 대중들의 흥분이 계속되던 와중에 일어났습니다. 운전기사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인터넷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는데, 이 글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버스는 승객들로 혼잡한 상태였고 아이가 혼자 내렸을 때는 그 상황을 알지 못했으며, 아이 엄마가 소리칠 때는 이미 4차로에서 2차로로 진입한 상황이어서 정차가 위험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던 터라 이 글은 즉시 대중의 주목을 끌었고 방송들 역시이 소식을 서둘러 보도했습니다. 이와 함께 서울시의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운전기사의 딸이라고 주장한 사람의 말과 일치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반전의 반전은 인터넷에서 ‘비윤리적인’ 운전기사를 고발한 당사자가 다시 글을 올리면서 였습니다. 그는 “제 감정에만 치우쳐서 글을 쓰게 된 점, 기사님께 너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이 어머님께도 죄송합니다. 제대로 상황 판단을 못 하고 기사님을 오해해서 글을 쓴 점에 대해 너무나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운전기사에게 따로 찾아뵙고 사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안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고
한 시간 뒤에, 하루 뒤에 결정하라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무렵, CCTV의 분석이 끝나면서 사태와 관련한 비교적 정확한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문제의 어린이는 당초 알려진 것처럼 4살이 아니라 7살이었다. 아이 어머니는 버스가 출발하고 10초 뒤 경에 아이가 내렸다며 소리쳤다. 이때 버스는 이미 2차로에 진입했으며, 버스 중앙차로 길이어서 4차로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버스기사는 아이가 따로 내린 것을 모르고 성인 승객이 내려달라는 걸로 알고 안전한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했다.” 는 사실이었습니다. 뒤늦게 아이가 없어진 걸 10초 동안이나 몰랐던 어머니에 대한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버스기사의 ‘무죄’는 밝혀졌지만 그는 이미 피해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23년 경력에 ‘이달의 친절상’을 네 번 받았고 ‘무사고 운전 포상’을 두 번 받았다고 합니다.
거친 언어로 자신을 비난하는 수 천 건의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는 ‘사건’ 발생 다음날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은 사실이 확인되기도 전에 손가락질을 하고, 돌팔매질을 하고, 죄인을 만들어버리는 인터넷 시대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정의의 편에 섰다고 생각하지만 그 정의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정의였습니다. 두들겨 패고난 다음에 사실이 밝혀지면 ‘아, 그랬구나’라며 쿨하게 넘어갈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이 입은 상처는 복구되지 않습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매도는 우리 사회를 위험한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중요한 사안일수록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하고 한 시간 뒤에, 하루 뒤에 결정하라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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