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죽음으로 드러난 진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걸었다고 평가받은 마광수 교수가 별세했습니다. 그에게는 여러작품이 있지만 마광수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입니다. ‘인생은 아이러니’라는 것이 그의 삶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윤동주 연구 1호 박사라는 마 교수는 자칫 묻힐 뻔했던 윤동주라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진지하게 연구했습니다. 문학사와 독립운동사에 윤동주라는 이름이 뚜렷이 기록된 데는 마 교수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28세에 교수로 임용된 마광수라는 인물이 천재로 알려진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그가 이름을 떨친 것은 윤동주 연구 때문이 아니라 ‘야한’ 소설들 때문이었습니다. 이른바 명문대 교수가 써낸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명문대 교수’라는 그의 신분과 함께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즐거운 사라>(이하 사라)는 엄숙한 한국 사회에 성 담론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를 ‘음란 문서 제조 반포’ 혐의로 구속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책을 읽지 않고도 이 글을 쓴다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었던 평론가들에 따르면 <사라>는 당대 일본의 소설들과 비교하면 시시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겉으로 엄숙하고 뒤로는 ‘딴 짓’을 서슴지 않는 한국의 대중들과 제도권 권력에 단죄 받으면서 마광수의 인생은 내리막길을 걷게 됐습니다. 당시 판사의 판결문은 두고두고 회자가 됩니다.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한 그의 판결문은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의 경계와 관련한 논쟁에서 인용되곤 합니다. 그러니까 판사 역시 <사라>가 표현의 자유 면에서는 무죄였으나 시대를 앞서간 죄를 물었다는 점을 적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판사의 말대로 우리의 성 문화는 단죄 받은 <사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도가 나갔습니다.
"마광수의 삶은 ‘염량세태’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사라> 이후 마광수의 삶은 극적으로 달라졌다고 합니다. 이전에 친했던 사람들조차도 <사라> 이후에 안면을 바꾸고 마치 ‘변태’인 것처럼 취급했고 그와의 관계를 끊었다고 하니까요. 잘 나갈 때는 가급적 가까이 하려 하고 조금이라도 권력이 떨어지면 외면하는 것은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에서도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의 주변에 들끓었던 사람들이 멀어져 갔고 쇄도하던 강연 요청도 뚝 끊어졌습니다. 누이와 조카를 빼고는 가족도 없었다고 하니 그가 말년에 얼마나 외로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마광수의 삶은 ‘염량세태’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살인을 한 잔인무도한 사람도 아니었고 폭행범이나 사기범도 아니었지만 친구도 사회도 그를 외면했습니다. 그를 구속되게 했던 엄숙주의와 군사문화의 시대가 끝나고 마광수는 다시 복직을 했지만 평범했던 그의 삶은 이미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윤동주 전문가’ 대신 ‘변태 교수’라는 꼬리표가 그를 사회의 왕따로 만들었고 점점 그는 고립되어 갔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았는데, 최근에는 투약을 게을리 했다고 하니 어쩌면 그는 이미 사회에 정나미가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살아 있었을 때 그를 외면했던 친구들과 언론과 사회는 그의 죽음을 접하고서야 예를 갖춥니다. 언론은 그를 난도질했던 대중과 제도권 권력을 뒤늦게 질타했습니다. ‘친구’들은 오열하며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습니다. 살아있을 때 한 번이라도 그에게 미소 지었으면 그의 마지막 길이 덜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깨달음은 늦게 옵니다. 마 교수에게 인간이란,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다가가려 하다가도 그가 ‘끈 떨어진 사람’이 되면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그와의 접촉을 끊으려 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염량세태’에 대한 반격일까요. 그의 유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유산과 재산을 준다고 말이지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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