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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라면과 스파게티

라면과 스파게티

얼마 전 ‘M스토리’에서 라면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 적이 있습니다(2017년 3월 1일자)만, 저에게 라면은 추억의 음식입니다. 또다시 추억을 공유하기 위해 라면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오늘은 스파게티와 같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쫄깃쫄깃한 면발에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라면과 노란 색깔의 단무지는 환상적인 세트입니다. 게다가 잘 담근 묵은 김치를 옆에 곁들이면 대략 10분가량은 미각의 천국을 느낄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만, 이 정도 수준의 라면을 끓여내려면 상당한 정도의 경험을 소유한 ‘달인’이라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소문난 라면 전문점에, 식사 시간을 피해 방문해야 특별히 맛있는 라면을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앞에 전제했듯이 오늘의 이 글은 라면만이 주인공이 아닙니다. 스파게티가 공동 주인공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스파게티라기보다 파스타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요. 파스타는 스파게티 같은 기다란 면발을 가진 국수 같은 형태의 면과 펜네나 퓨실 같은 짧은 면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일반 명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일반에 익숙한 표현은 스파게티이기에 스파게티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스파게티도 비골리, 카날리니, 지티 등 국수와 비슷한 면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밥을 즐겨 먹지만, 가끔씩 먹는 스파게티 요리는 입맛을 상큼하게 돋우어 주는 역할을 하기에 미각 전환으로는 그만입니다. 또 토마토 베이스, 크림 베이스, 오일 베이스 등 소스도 다양해서 입맛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라면과 스파게티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재료의 차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을것입니다. 실제, 파스타는 강수량이 적은 지중해 지역에서 재배하는 듀럼 밀이 재료이고 라면은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서 재배하는 일반 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라면과 스파게티의 차이를 물어보는 것은 ‘재료’ 때문이 아니라 가격 때문입니다. 그것도, 식당에서 주문해서 먹는 가격 말이지요. 맛이나 음식 ‘규모’를 봐도 라면은 스파게티에 절대 꿇리지 않습니다. 전문점에 가면 적당한 양의 면에다 홍합이나 바지락, 오징어, 게 등을 추가해 먹음직스러운 해물라면을 내놓습니다.

값은 전문점 기준으로 6천 원에서 8천 원 정도 합니다. 그런데 스파게티는 라면과 값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전문점 기준으로 1만 3천 원에서 1만 6천 원입니다.


면의 두 배 정도 된다는 거지요. 그러면 이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요? 상당 기간에 걸쳐 관찰한 결과, 차이는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걸로 판단이 됩니다. 잘 아시는 대로, 파스타를 먹으려면 ‘양식당’에 가게 되는데, 양식당의 ‘분위기’는 라면집과는 사뭇 다르다는 겁니다. 요즘에야 멋진 건축물의 지하에 자리 잡은 곳도 꽤 있지만, 양식당은 일반적으로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닥도 값이 나가 보이는 대리석이나 고급 마룻바닥인 경우가 많지요. 실내 장식도 신경을 쓰고 와인 셀러 등을 구비한 곳도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나 유지하는 데 자연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입니다.



"차이를 만드는 건 역시

‘분위기’입니다"



‘라면집’은 어떤가요? 용어부터 ‘양식당’과 차이 나는 ‘집’이라는 말을 쓰는데, 양보를 해서 ‘분식점’이라는 말을 쓰는 곳도 있지만 ‘라면식당’이라는 말을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라면은 ‘대충 때운다’는 값싼 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파스타/스파게티는 품격 있는 음식이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게 된다는 거지요.

어떨 때는 근사한 식당에서 단무지와 묵은 김치를 곁들인 라면을 먹고 싶은 생각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점잖은’ 분들 가운데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룸’이 있는 식당에서 라면을 주문한적이 있는데, 스테이크, 샐러드, 파스타 등도 있었지만 라면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그분들 이야기는 라면이 먹고 싶을 때가 있지만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라면집에 들어가기가 뭣해서 라면을 먹을 수가 거의 없는데, 잘됐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라면이 ‘싸구려’ 음식이 아니라 라면을 먹는 환경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단일품목으로 ‘라면 식당’을 하려고 ‘양식당’ 같은 장소를 선택하면 한 달 안에 망할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고급 식당에서 이런 식으로 메뉴를 다양화할 수는 있다는 거지요.


가령, 고급 식당에 들어가서 한 시간 정도 멋진 음악을 들으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파스타 값인 1만 5천 원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대부분 ‘라면집’의 경우에는 입에다가 라면을 ‘집어 놓고’ 목구멍으로 밀어 넣다시피 하면 20분 만에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형편이 됩니다. 그러니 식탁 회전을 빨리하여 3천 원짜리 라면을 많이파는 것이 1만 5천 원짜리 스파게티를 파는 것보다 더 ‘남는 장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핵심은 틈새시장까지 차지하려면 그 수요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라면에도 ‘품격’을 주자는 주장에 이의를 달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밥도 어떤 장소에서는 ‘한정식’으로 불리고 어떤 곳에서는 ‘가정식 백반’으로 불리지 않습니까? 아이러니는 상당수 경우에 ‘가정식 백반’이 훨씬 맛이 있는데, 한정식은 5만 원, 가정식 백반은 6천 원이란 거지요. 차이를 만드는 건 역시 ‘분위기’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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