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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마크롱, 관습

마크롱, 관습

우리나라 대선도 관심을 끌었지만 그보다 먼저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도 전 세계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브렉시트(Brexit)에 이어 실시된 프랑스 대선에서는 극우 정당의 르펜 후보를 물리치고 30대의 마크롱 후보가 당선돼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마크롱은 브렉시트로 긴장 상태에 들어간 유럽을 안정시키고 EU 강화, 자유무역, 이민자 선별 관리 등으로 ‘건강한 유럽’의 일원으로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영국의 EU 탈퇴 선언으로 정치적 태풍에 휩싸였던 유럽이 안정코너을 되찾는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이런 역사적 의미보다 일반인의 관심을 더 끌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마크롱의 부인인 트로뉴였는데요. 마크롱보다 무려 24살이 많은 연상의 여성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24살이 적다면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24살이 많은 것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는 것이 바로 ‘관습’의 힘입니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와 24살 차이가 나는데, 부인이 연하네요. 나이 차이 때문에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석 달 동안 단기 연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영국인 친구를 만나 그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가장 평범한 영국 이름인 잭(Jack)과 질(Jill) 커플이었는데, 그들을 표현하는 단어를 듣고 적잖게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커먼로(common law) 부부라는 것이었는데, 관습법상의 부부, 즉 동거부부란 것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그들에게는 어린 아들딸도 있었습니다. 혼인신고나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는 것 외에 여느 부부와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아내나 남편으로 호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서로를 부를 때는 이름을 부르거나 ‘여보(honey)’라고 하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커플(couple)’로 표현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동거’라는 말은 꺼내지도 못할 때입니다. 지금은 비교적 관대해졌다고 해도 공공연하게 ‘동거’를 공표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30년 전 영국에서는 동거부부가 혼인신고를 한 부부와 똑같이 생활하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은 아무 제약 없이 유치원과 학교를 다녔습니다. 복지 혜택도 여느 부부와 다름없이 받았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마크롱을 보면서 ‘관습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의 웬만한 나라들이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연원은 모르겠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사회가 동거부부를 인정하게 된 것이 아닌가 짐작했습니다. 또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주의의 탄생지 유럽에서는 개인의 삶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철학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거지요.


이런 사고방식은 마크롱 부부에게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둘이 처음 만났던 장소는 ‘학교’였습니다. 캠퍼스 커플이라면 캠퍼스 커플이 겠는데, 두 사람의 ‘신분’은 관례에서 상당히 벗어납니다. 여성은 교사였고 남성은 학생이었습니다. 가르치던 여교사와 제자인 남학생 간의 사랑이었는데, 우리나라 같으면 ‘불륜’으로 엄청난 지탄을 받았을 스캔들이었습니다. 개인의 선택에 관대하다는 프랑스라고 하지만 마크롱의 부모도 이들의 결혼에 처음에는 극력으로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은 2007년 결국 결혼에 이릅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이 잘되지 않습니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전통은 유럽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는 유독 정치인의 ‘스캔들’이 대중의 관심사로 자주 등장합니다. 올랑드 대통령의 경우에도 30년간 동거한 루아얄에 이어 대통령 궁에 들어갈 때는 발레리와 들어갔지만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공식적인 동거인’은 여배우 쥘리 가예입니다. 그러니까 ‘정치’만 잘하면 여자 친구, 남자 친구와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 않는다는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개인사’를 처리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도 결국은 ‘불륜’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커튼 뒤의 생활이 있다는 것인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지요. 마크롱을 보면서 ‘관습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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