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중국에서 ‘가짜 달걀’ 사건이 있었다. ‘가짜 달걀 대왕’으로 불리는 자가 처음으로 껍질까지 붙은 가짜 달걀을 제작하고 비용까지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는데, 이것이 진짜 달걀과 섞여 유통됐다는 것이다. 진짜 달걀과 섞여 있으면 쉽게 구분이 어렵고, 탱글탱글한 모습에 깜빡 속기 쉬운 가짜 달걀, 하지만 아무리 겉이 그럴싸해도 화학약품 범벅인 가짜가 진짜와 섞여 유통됐다니, TV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뉴스는 과연 진짜일까, 가짜일까?
요즘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가짜뉴스(fake news)’ 논쟁을 보고 있자면 몇 해 전 저 멀리 중국에서 벌어진 가짜 달걀 뉴스는 고사하고 오늘 아침 우리 한국 땅에서 본 뉴스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스럽다.
가짜뉴스는 TV뉴스나 신문의 형식은 가져왔으나 그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선동 등 의도성을 가지고 고의적으로 퍼뜨리는 뉴스를 말한다. 이 정의라면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방법은 간단해보이기까지 하다. ‘진짜’ 방송사나 신문사에서 전하는 뉴스를 보는 것. 하지만 미국 대선 판까지 뒤흔든 가짜뉴스 논쟁이 그렇게 쉽게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최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질문하는 CNN 기자를 향하여 ‘진짜(very) 가짜뉴스’라고 공격했다. 가짜뉴스를 피하려면 ‘믿을만한’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를 보면 되는 줄 알았는데, CNN이 가짜라고?
트럼프의 이러한 언사는 우리가 그동안 생각해온 가짜뉴스 식별법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를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으나 트럼프가 벌이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가짜뉴스에 휩쓸린 우리 언론계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가짜뉴스는 미 대선을 거치며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일 뿐 사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다매체 시대가 되면서 서서히 그 세력을 키웠다고 할 수 있다(물론 그 이전에도 가짜뉴스는 있었다). 미디어의 희소성이 사라지고 인터넷으로 미디어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시민들은 보고 싶은 뉴스를 골라서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언론사가 보도했는지는 덜 중요해지고 어떤 정보인지가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고도 어느 언론사의 뉴스를 봤는지 기억하기 어려웠고 기억할 필요도 점점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라면 한 봉지를 살 때도 브랜드를 따지는 똑똑한 소비자들이 왜 뉴스는 브랜드를 무시하게 됐을까? 그것은 아마 여기나 저기나 다 같은 보도라서, 여기도 저기도 다 믿을 수 없어서, 진짜 언론사들이 가짜뉴스를 섞어 팔아서, 브랜드 있는 언론사는 진실을 감추는 듯 보이고 1인 미디어나 군소 미디어들이 진실에 더 다가가는 뉴스를 전한다는 믿음이 싹 터서는 아니었을까? 다매체 속에서 천편일률적인 뉴스, 정치나 경제 권력이 제공하는 보도자료 전달에 바빴던 언론 시장 속에서 소비자들은 미디어 ‘브랜드’에 대한 신뢰와 기준을 잃었고 이 틈을 가짜뉴스가 파고들었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대책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다. 언론 관련 정부부처나 산하기관들, 학계, 그리고 언론사나 포털뉴스 종사자들은 가짜뉴스를 어떻게 정의해서, 적발하고, 막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각종 대책을 시민들에게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가짜 달걀은 깨거나 먹어보면 단 번에 알 수 있으나 가짜뉴스는 이와 달라 규제나 처벌로 단 시간에 청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면 가짜뉴스는 신음하는 미디어 생태계가 우리에게 내미는 기회의 손일지도 모른다. 가짜뉴스 논란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진짜뉴스’ 그리고 언론의 신뢰라는 무거운 주제를 천천히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느껴진다.
목원대학교 광고홍보언론학과 교수 조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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