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과의 첫 만남
“20대 초반에는 직장도 다니고 공부도 하고, 그랬죠.
그때는 직장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아가씨였어요, 제가.”
‘명장’이라는 호칭의 무게. 그리고 ‘스님’이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 과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고 있었던 방청객들 앞에서, 선재스님은 20대 초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꺄르르 웃어보였다. 스물 넷. 한창 예쁠 나이에 불교에 귀의한 스님.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외모와 맑은 피부, 그리고 총기어린 눈빛까지. 스님에겐 세상이 원하는, 하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은 날 것의 무언가가 있었다.
“먹을 것이 넘쳐나죠. 없는 게 없죠? 그런데 왜, 아픈 사람은 점점 더 늘어날까요?”
TV 속에선, 특급 셰프들이 자신의 요리 비법을 선보이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잘 먹고 사느냐가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 버린 시대. 사찰음식은, 음식이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가는 시류의 반대편에서, 조용히, 또 다른 음식문화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멀리는 미슐랭 가이드 서울에 사찰음식 전문점이 선정된 사건부터, 가까이는 선재스님의 르꼬르동 블루(프랑스 최고의 요리학교) 특강까지. 그 어떤 자극적인 재료 없이도 완벽하고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사찰음식은 일종의 발견이었다.
절 밥, 그리고 사찰음식
“오신채를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사찰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오신채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신채란, 향이 강한 다섯 가지 재료(파, 마늘, 부추, 달래, 양파)를 말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이 재료들이 사람의 노기를 부추겨 화를 부른다고 여긴다. 그리고 또 하나. 예로부터 사찰에 출입할 때는, 일주일 전부터 오신채로 만든 음식을 먹지 않고 몸을 정갈히 했다 전해지는데, 몸에서 나는 강한 향 때문에, 혹시나 들짐승에게 화를 입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고기를 먹지 않고 음식을 덜 먹는다고 영양이 부족하지 않느냐, 칼로리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 걱정들을 하시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겁니다.”
같은 재료라 해도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것과 자연에서 난 것이 지닌 향과 에너지, 그리고 맛의 차이는 크다. 여름 무는 아무리 솜씨 좋은 요리사가 요리를 해도 쓴 맛이 나고, 가을 무는 그저 재료를 채 썰고 볶아 식탁에 내놓았을 뿐인데도 자꾸만 손이 갈만큼 달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몸에 가장 좋은 에너지 가득한 음식 재료는, 우리 땅에서 나는 제철 재료라는 것. 그것이 스님의 요리 지론이다.
“그저 들기름에 볶고 좋은 장으로 간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도, 맛이 괜찮을 거예요.”
선재스님이 보자기에서 음식을 꺼내놓자,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호두와 재피에 고추장으로 양념을 한 호두재피고추장무침, 배추를 데쳐 된장으로 버무린 배추된장찜과, 껍질을 살짝 벗긴 우엉을 들기름에 볶은 뒤 간장으로 간을 한 우엉간장조림.
“스님 음식에서, 엄마 맛이 나요.”
어떻게 이런 맛을 내냐며 볼펜을 꺼내들고 조리법을 캐묻는 사람, 연신 환호성을 지르며 젓가락을 놓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엄마가 해주시던 바로 그 음식 맛이라며 울컥,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까지. 스님은 그렇게, 음식으로 스튜디오 안 모두를 위로했다.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을 위하여
“오해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들은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국에 고기도 넣고 조미료도 넣고 해야 간신히 먹는다고요? 천만의 말씀. 그냥 무 자체로 충분합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전엔 절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터. 아이들에 대한 스님의 애정은 유별나다. 최근엔,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아이들을 보는 게 안타까워, 식습관을 바로 잡기 위한 교육용 뮤지컬까지 제작했을 정도!
“빵이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아예 집에서 치워버리세요. 사다 두고선 ‘조금만 먹어라’ 한다고 아이들이 말을 듣겠습니까? 당연히 안 듣죠. 빵은 치우고, 그 자리에 옥수수, 감자, 고구마, 이런 걸 쪄서 놓아보세요.”
아이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변하라는 스님의 말에, 스튜디오 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던 스님과의 두 시간.
“처음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려웠어요. 하지만 지금은, 요리를 하고 제가 만든 음식을 알리고 하는 행동들이 모두, 제 수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리가 곧 수행이라는 깊은 가르침을 끝으로 스님은 어디선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또 다른 만남을 찾아, 발걸음을 재촉했다.
강미희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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