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단해질 때면 기도를 했다. 현실이 버거울 때마다 어느 공간을 떠올렸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의지할 마음이 필요했다.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 공간은 나무와 바람으로 가득 차 있는, 인적이 드문 작은 절이 있는 산.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날리고 눈을 감는다.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평온해진다. 아마 이곳에 눈이 내리면 덕숭산 수덕사의 모습과 닮지 않았을까 싶었다. <테마기행 길>을 보고 있는 내내 눈 쌓인 산사를 걸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상쾌해졌다.
천년고찰 수덕사의 하루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호서지방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곳에 수덕사가 위치해 있다. 충청도를 대표하는 사찰로 백제 358년에 창건되어 그 역사가 깊다. 내가 상상해오던 작은 사찰은 아니지만, 해발 495m 숲 한 가운데에 위치한 수덕사에서의 하루는 어떨까 그려본다.
마침 이곳에 현대인을 위한 템플스테이가 마련되어 있다. 산 아래에서 입었던 옷을 갈아입는 순간 사찰에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른다. 천천히 걸으며 발의 감각에 집중하고,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 식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공양을 하는데, 그 예법이 꽤나 까다롭다. 말을 해서도,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서도, 음식을 남겨서도 안 된다. 먹는 그 순간에도 철저히 깨어있기 위함이겠지.
다양한 사람들이 절을 드나들게 되면서 음식의 종류도 다양해졌다고 하니, ‘절에서의 하루’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해 보게 된다. 삶에 띄어쓰기가 없이 범람하는 나날을 붙들고 있는 나와 당신이 떠올랐다. 치열한 사회를 버티는 힘은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하고 고민에 빠졌다.
사찰 곳곳에 숨겨진 의미들
덕(德)산면, 덕(德)숭산의 수덕(德)사는 덕이 세 개가 들어간다 하여 삼덕(三德)이라 불린다. 덕이 많은 공간이라니,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롭고 후덕해진다. 그 가운데에 소박한 자태의 3층 석탑을 볼 수 있는데, 오른쪽 어깨를 탑 쪽으로 향하게 하여 시계방향으로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소원 한 가지를 품고 탑돌이(소원을 빌며 탑을 도는 일)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차분하고 경건해진다. 간절함을 품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하고 궁금해졌다.
덕숭산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수덕사에 있다. 총 1,080계단으로 이루어진 이 길은, 인간의 108번뇌를 10번 내려놓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다. 곳곳에 숨겨진 의미와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일이 좋다. 그런 의미들엔 애정이 담겨있기 마련이니까.
삶을 지탱하는 힘
명상과 참선을 통해 평정심을 찾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을 수덕사의 스님에게서 보았다. 바로 유머를 잃지 않는 힘이다. 삶이 언제나 고되고 심각하면 유머가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세속에서 초월해 어떤 것이든 유머로 유연하게 받아 넘기시는 스님들의 여유로움에 감탄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하루쯤 가까운 산사에 가서 나에게 온전히 시간을 써볼 일이다.
복은진 / 대전MBC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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