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대통령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은 ‘오벌 오피스(Oval Office)’라고 부릅니다. 모양이 타원형으로 생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대통령의 집무실이라고 하면 왠지 근엄하고 딱딱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나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첫 번째 공무원의 사무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사가 논의되고 최고 결정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중대 결정을 하는 곳,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자못 엄숙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8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오벌 오피스를 어린이들에게 자주 개방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스스로 섭외를 했겠습니까, 오벌 오피스에 온 어린이들은 그들의 부모를 따라 대통령의 집무실을 갔던 것이지요.
어린이들의 ‘급’도 다양합니다. 생후 몇 달밖에 안 되는 쌍둥이에서부터 기어 다니는 아기, 유치원생, 초등학생 등에 이르기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흑인, 백인, 중남미계 등 인종도 다양합니다. 오벌 오피스에서 어린이들은 기어 다니기도 하고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품에 안겨 대통령의 얼굴을 만지기도 하지요. 어쩌면 그들의 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 될 장면들은 백악관 전속 사진사에 의해 한 컷 한 컷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쓰는 집무실에서 보낸 순간들은 그들의 삶에서 인도 등(guiding light)이 될지 모릅니다. 대통령의 꿈을 꾸는 어린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치와 민주주의, 리더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수많은 어린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 될 것입니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쓰는 집무실에서 보낸 순간들은 그들의 삶에서 인도 등(guiding light)이 될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 우리가 방문한 한 장소가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만난 어떤 사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게 되는 것처럼, 오벌 오피스를 방문했던 어린이들에게 그 방문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모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관대작이거나 대기업의 임원 등 ‘금수저’들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그렇지만 그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로 백악관의 직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의 아이들에게 대통령 집무실을 ‘구경’시켜 주었던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백악관을 떠나 이직을 하면서 아이들을 데려왔고, 어떤 이들은 출산을 한 뒤 인사를 하러 오는 길에 어린 아기들을 안고 왔습니다. 오바마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뺨에 키스를 해주고, 아이와 함께 집무실 바닥을 기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유난히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그만큼 많이 만났다는 얘기지요. 아이들은 그의 뺨을 만지기도 하고 같이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고, 이마를 비비는가 하면, 머리를 만져보고 싶다는 어린이에게 머리를 대주기도 합니다. 그가 만났던 가장 고관대작 어린이는 3살 난 조지 영국 왕자였습니다.
그는 왜 어린이들을 ‘특별대우’했을까요? 아마도 그는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어린이들에게 ‘멋진 순간’들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네 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조부모의 손에 커야 했던 오바마에게 어린이는 특별한 존재라는 겁니다. 또 대통령인 그를 보좌해주는 직원들이 누구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겠지요. 백악관에서 대통령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국민들의 대통령, 직원의 대통령, 어린이의 대통령으로 그는 퇴임합니다. 퇴임 전 조사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58퍼센트, 사상 세 번째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스캔들이 없었던 대통령, 재임 중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던 대통령, 전쟁을 끝낸 대통령으로 그는 물러납니다.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임에 틀림없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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