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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아름다운 퇴장

아름다운 퇴장

48세의 나이에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대통령도 웬만큼 작은 나라가 아니라 수퍼파워, 초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대통령입니다. 버락 오바마 이야기입니다. 시쳇말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입니다. 콜롬비아대학교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인물이니 미국 대통령이 될 만큼 ‘가방끈’도 길고 그의 연설을 들어보면 때로는 넋이 나갈 정도로 말을 잘합니다. 물론 나름대로 정치 경력도 있습니다.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을 거쳤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미국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됩니다. 알려진 대로, 미국 연방 상원의원은 주당 두 명만 배정된 일종의 ‘정치 귀족’ 같은 직위입니다. 연방 하원의원은 임기가 2년인 반면, 상원의원은 임기가 6년입니다. 6년의 ‘장기 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느긋하게 정치를 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말하자면 44세의 젊은 나이에 귀족 작위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나이’처럼 보이는 오바마지만 그의 업적은 얻은 것이 아니라 성취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출생 배경만 봐도 그렇습니다. 부친은 케냐 출신, 모친은 유럽계 미국인이었는데, 오바마가 두 살 때 부모는 별거를 시작했고 네 살 때 이혼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후회하는 것이 고등학교 때 마리화나 등 마약을 한 일이라고 털어놓을 만큼 일탈을 했다고도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역경을 성공의 디딤돌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이혼과 부모의 재혼, 하와이, 인도네시아, 미국 등 다른 환경을 경험하고 ‘결손가정’에서 성장하면서 다문화와 ‘뒷골목’에서 방황하는 세대들을 접한 오바마는 시민 인권운동에 눈을 뜹니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로 리뷰(Law Review)>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지내면서 언어의 힘을 느끼게 되었고 언어를 더 연마했을 거라 추정해봅니다. 결국 정치는 언어로 하는 것이고, 정치의 첫 걸음은 말과 설득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까요. 오바마식 소통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저는 워싱턴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때도 ‘당연히 힐러리’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당연히’는 ‘이변’으로 변했고 오바마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를 도왔던 요인은 많았습니다. 조지 W. 부시는 미국의 정치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조부는 상원의원을 지냈고 부친인 허버트 부시는 UN 대사, 중앙정보국장, 그리고 대통령까지 지냈습니다. 대표적인 정치가문 출신의 W. 부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통해 미국민들에게 ‘전쟁 대통령’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젊은 군인들이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본 미국민들은 정권 교체를 열망했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정치가문 출신인 힐러리 대신 ‘변화(Change)’를 내세운 오바마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국민들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오바마는 집권 기간 동안 두 개의 전쟁을 정리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내치에 주력했습니다. 물론, 오바마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인물도 많습니다. 미국의 힘을 축소시켰다거나 미국의 일자리를 해외에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은 힐러리 대신 트럼프를 선택했습니다. ‘위대한 미국 재건’을 내세운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 실현될지는 앞으로 평가할 일이겠지요.


어제(1월 10일), 오바마는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연설이 될 ‘고별 연설’을 했습니다. 그를 키워준 시카고에서 행한 고별 연설에서 그는 “국민 여러분들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오바마는 “거실과 학교, 농장, 공장 생산라인에서, 해외의 군부대에서 여러분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나를 만들었다.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가 시작했을 때보다 미국은 더 나아졌고 강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 그는 마지막까지 국민들과의 소통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패티를 흘려가며 시민들과 함께 했고, 백악관 집무실에는 직원들의 자녀들을 초청해 놀아주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의 문턱을 낮추었습니다.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오바마가 기록한 지지율은 55%입니다. 집권 중 최고 지지율은 67%였습니다. 집권 기간 중 실업률은 10%에서 4.7%로 떨어졌고 경제성장률은 -2.8%에서 2.6%로 올라갔습니다. 본인이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건강보험제도 개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바마는 ‘레임덕 없는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의식해 고별 연설에서 오바마는 유머 감각을 발휘했지요. “이제 저를 ‘레임덕’이라고 불러도 됩니다. 아무도 지시를 따르지 않아요.” 사람들이 규정을 어기고 연단에 올라가서 ‘4년 더(Four more years)’를 외쳐댔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3연임 압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연임만 했기 때문에 4년 연임만 하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습니다(유일한 예외가 프랭클린 루스벨트로 2차 대전 전시에 3연임을 했습니다).


원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했기 때문일까요. 오바마는 ‘4년 더’를 외치는 시민들 앞에서 9번 눈물을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그에게 열광적으로 환호와 박수를 쏟아냈고 언론은 “미국은 버락 오바마의 품격을 그리워할 것”이라며 그의 목에 빛나는 화환을 걸어주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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