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손의 감각을 찾다
작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내 손이 밥을 먹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이외에도 그림을 그릴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두 손을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니 잊혔던 감각이 깨어납니다. 대상을 자세히 바라보는 예민하고 섬세한 눈처럼 기민한 감각들 말입니다. 내 손 사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히며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리다가 나무를 깎았고, 어느 순간에는 흙을 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끊임없이 감각을 일깨우며 무엇을 만질 때 자유로움을 느끼는지 탐구한 끝에, 나는 흙의 진한 향기를 좋아하고 흙을 만질 때 자연의 장엄함 같은 것을 느끼고,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도자기 작업을 시작한 와중에 <화이트골드 400년의 여정>을 보게 된 것은 어떤 우연이었을까요? 우리의 것, 세상을 사로잡다 <화이트골드 400년의 여정>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도자기 역사를 보여줍니다.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빨리 시작된 도자기 문화는 우리나라의 자존심과도 같습니다. 전 세계에 20여 점 존재하는 조선의 ‘달항아리’를 극찬하는 외국인들을 볼 때 왠지 모를 뿌듯함에 미소 짓게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겠지요. 고려청자와 조선분청자 그리고 백자를 거쳐 발달해 온 우리 도자기는 극도의 순수함과 고요한 조화를 고루 갖추어 소박하지만 꼿꼿한 삶을 살았던 조상의 결을 느끼게 합니다.
예술성을 겸비한 실용성
그러나 오랜 자기 역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도자기 산업은 저조하기만 합니다. 실로 도자기를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생업의 일부로 접하기 시작한 저로서는 이 대목에서 절실히 공감하여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도자기 시장의 60%가 수입도자기인데다 현대적인 디자인의 유럽 도자와 저렴한 중국 도자 사이에서 전통을 고집하는 우리 도자는 소비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것입니다. 유럽의 다양한 도자기 회사와 예술가의 사례는 이런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손꼽히는 도자기 회사들은 전통적으로 만드는 기법들도 중시하지만 소비자를 사로잡는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젊은 소비층의 취향과 소비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에 계속해서 매력적인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전통적으로 옹기를 제작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쩌면 옹기라는 틀과 도제식 교육을 벗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천 년을 바라보는 감각
흙을 만지는 일은 섬세한 일이며, 수일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일입니다. 400년 이상 흙을 만진 손의 감각은 우리만이 가진고유의 기술이며, 그 어느 곳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돈으로환산 불가능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는 것과 전통만을 고집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예술문화의 보전이라는 지점에서 모두 생각해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과연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전통
과 현대를 아우르는 조화로운 도자 예술을 지속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논의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복은진 / 대전MBC 블로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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