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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절실해야 성공한다

절실해야 성공한다

오늘은 로스차일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제는 ‘신화’라고도 불리는 그 가문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입니다. 그는 1744년(또는 1743년)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게토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이 통일된 것이 1871년이니 그가 태어난 것은 독일이 통일되기 전의 신성로마제국 시대입니다. 다이애스포라기의 유태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박해받는 ‘쓰레기 민족’ 대우를 받고 살았고 마이어 암셀도 프랑크푸르트의 빈민 지역에서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행상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전역을 누비며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전국 곳곳의 특징이나 지역의 문화를 습득할 기회가 되었지요. 찢어지게 가난했던 살림 때문에 그는 일찌감치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는데, 열살 전후로 부친 지인의 가게에서 경리 보는 일을 맡아 하면서 돈에 대한 감각을 익혔습니다. 왜 자신은, 또 유태인들은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자각도 했을지 모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은 그가 열두세 살 되던 무렵에 유럽 전역을 휩쓸던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마이어 암셀은 끝도 모르는 허드렛일 생활을 하며 끼니를 때웠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살던 동네의 골동품가게에서 거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언가 물건을 내려놓고 돈을 받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상당한 액수의 돈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그는 골동품가게를 관찰했고 저녁 무렵 같은 사람들이 와서 물건을 주고 돈을 받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이어 암셀은 그들의 뒤를 미행했습니다. 거지처럼 남루한 행색을 하던 이들은 도시의 쓰레기장으로 가더니 쓰레기를 헤집고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동전이었습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이전, 독일 영토에는 많은 제후들이 소규모 지역을 지배하며 각자의 동전을 발행하였고, 통일을 앞두고 있던 당시 귀족들은 각 제후국의 귀한 동전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골동품상들은 이 귀족들을 고객으로 희귀 동전을 판매해서 상당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마이어 암셀이 성공한 것은
절실함,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이거다!’ 하고 마이어 암셀은 속으로 외쳤을 것입니다. 피땀 흘려 일을 해도 하루 끼니를 때우기가 힘들었지만 쓰레기 더미에서 동전을 찾아 골동품 가게로 가져온 이들은 상당한 돈을 받아갔던 것입니다. 그는 다음날 자신도 쓰레기 더미를 뒤졌습니다. 어린 시절 독일 지역 곳곳을 누비며 장사를 하던 경험은 그에게 귀중한 역할을 했습니다. 각 제후국에서 장사를 하려면 그 지역의 화폐를 알아야 했고, 어떤 동전이 귀한 대접을 받고 어떤 동전이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당연히 마이어 암셀이 찾아낸 동전들은 더 높은 값을 받았습니다. 얼마가 지나자 그의 생활도 상당히 나아졌습니다. 여기서 멈추었다면 오늘날 로스차일드 가문은 없었겠지요.

 

얼마 뒤 그는 헤센 지역을 다스리는 빌헬름 공이 골동품 수집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의 다음 목표가 생겼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는 빌헬름을 만나야 했습니다. 마이어 암셀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끝에 당시로써는 대단히 귀한 동전 세트 하나를 손에 넣게 됩니다. 그리고 가진 돈을 모두 투자해 멋진 양복을 맞춰 입었습니다. 공중목욕탕에 가서 깨끗이 목욕을 하고 이발을 한 다음 그는 빌헬름 공의 저택을 방문합니다.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마이어 암셀은 귀한 동전이 들어있는 상자를 열어 보입니다. 빌헬름 공은 당연히 가지고 싶은 마음으로 눈이 반짝거렸겠지요. 돈이 들어도 손에 쥐고 싶었을 겁니다. 희귀 동전 수집은 요즘으로 치면 귀한 자동차나 시계만큼 당시 고관대작들의 취미였다고 하니 말이지요. “저하께 이 동전 세트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부디 거절 마시고 받아주시면 제 생애의 영광이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빌헬름 공은 쓰러질 만큼 기뻐했습니다. 마이어 암셀은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귀한 동전 세트를 선물로 바쳤습니다. 그의 환심을 산 것은 물론입니다. 환심은 신용으로 이어졌겠지요. 이를 바탕으로 그는 왕실에 물건을 대는 납품업자가 됩니다. 왕실의 납품업자는 평생이 보장된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직업이었습니다. 오늘날 거부 로스차일드 가문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성공을 위한
가장 귀한 자산은 교육"

 

12살에 고아가 된 마이어 암셀이 성공한 것은 절실함,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성공하고 싶었고 성공하려면 돈과 권력을 가진 귀족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침침하고 더러운 게토에서 탈출하려면 반드시 귀족과 연결이 되어야 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털어서 목욕을 하고 멋진 양복과 가방을 사서 귀족을 만났습니다. 외모가 적절하지 않으면 귀족을 알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치밀하게 전략을 세웠던 것입니다.


로스차일드는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마이어암셀이 태어난 지 2백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금융을 좌우하는 금융 거부가 되었습니다. JP모건체이스, 골드만삭스, 도이치방크 등 전세계 주요 은행들이 로스차일드가의 직접 지배를 받거나 그 가문과 연계되어 있다고 합니다. 로스차일드의 사업 영역은 금융뿐만 아니라 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에 소유하고 있는 유명 와이너리 무똥 드 로칠드와인은 보르도 1등급 와인으로 꼽히면서 전세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다이아몬드 브랜드 드비어스와 프랑스 철도에도 투자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세계 금융권을 좌우한다고 해서 세계적 금융도시 뉴욕을 ‘쥬욕(Jew York)’이라고 비꼬아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태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유태인은 다이애스포라로 전 세계를 떠돌던 유랑민족이었는데, 곳곳에서 박해를 받아 나가라는 명령을 받으면 즉시 그 지역을 떠나야 했습니다. 때문에 주택이나 땅 같은 부동산에 투자하기보다 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동산, 즉 쉽게 옮길 수 있는 곳에 투자를 했다고 하지요. 그러다 보니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라는 유태인 고리대금업자까지 등장시킬 정도였습니다.


유태인 교육법이 유명한 것도 성공을 위한 가장 귀한 자산은 교육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머리에 담고 이동하는 것만큼 편리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로스차일드 가문이 오늘날 5경(1경=10,000조)에서 33경에 이르는 자산을 소유하게 된 것은 마이어 암셀의 절실한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가난에서 탈출하고 싶은 절실함, 성공하고 싶다는 절박함 말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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