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어느 날.
공주시와 대전MBC가 함께 준비한 전국 규모의 생활체육 오픈탁구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 느닷없이 TV생중계방송의 해설 제안을 받았다. 나의 무엇을 믿고 맡겨준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사건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방송 경험이라고는 대학시절 방송반 생활과 일주일에 한 번씩 2년 정도 대전M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것이 다였다. 80년 광주항쟁의 전초전인 대학교 시위에서 메가폰과 교내방송으로 방송했던 것도 이력이라면 ….다행스런 것은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강압에 못 이겨 웅변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창조는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지만
나름의 색깔이 필요
해설을 맡기로 결정하고 나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다른 유명인들의 탁구 해설을 독파하기 시작했다. 녹음기를 이용하여 암기를 시작하기를 수십 번, 소리를 나지 않게 한다음 화면만 보고 더빙하기를 수십 번 반복한 결과 얻은 것은 나대로의 해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창조는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지만 나름의 색깔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달았다.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고 중계석에 앉으니 식은땀이 살짝 배어 오는 느낌과 함께 긴장감으로 입이 바싹 말라옴을 느낄 수 있었다. 오픈닝 멘트를 하기 위해 일어나니, 아뿔사! 키가 맞지 않았다. 부모님, 왜 나를 짧게 낳으셨나요 하는 마음으로 어정쩡해 하는 나에게 스태프가 기구를 담아두는철제 가방을 슬며시 내미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두서너 번의 NG 끝에 오프닝을 마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해준것인 게 분명하다. 광고가 끝나고 화면이 들어오면서 고난은 시작되었다. 전문가인 아나운서에 압도된 나머지, 언제 내가 말을 해야 하는 지가 불분명했다. 다행히 아나운서가 내가 주눅 들지도,나대지도 않도록 적정선에서 끊고 맺음을 리드해 갔다. 초보인 나지만 용기가 생겼고 중계를 하면서 말문도 자연스러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화면을 보고 해설을 해야 하는 원칙을 자꾸 벗어남을 느꼈다. 발 아래보이는 탁구대가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화면은 슬로비디오가 나가고 있는데 나는 현장을 중계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간신히 2시간의 생중계를 마친 나의 등에는 땀이 배어 있었고, 팔 다리는 약간의 경직으로 부자연스러웠다. 실수를 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는 나에게 스태프는 “잘 하셨습니다.”라고 답을 하면서 나를 위로해주었다. 주변에서도 무난한 점수를 주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어떻게 끝났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2시간의 생중계
배어 나오는 땀과 경직된 팔 다리
며칠 후 방송국에서 만들어준 중계비디오 테이프를 받고 나서야 내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곳곳에서 오류가 나타났지만, 자신감 있는 목소리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어느날인가 휴대폰 매장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계속 쳐다보면서 주인과 무슨 얘기를 나누는가 하더니, 혹시 방송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아니라고 답변을 하자, 목소리가 탁구경기 해설했던 사람과 똑같다며 다시 물어보는 것이다. 그 후로도 가끔씩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겨서 앞으로는 나쁜 짓을 하고 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나에게 무엇을 믿고 생방송을 허락한 신영환 부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탁구심판 교육도하고, 그날이 결국은 단초가 되어 지금도 가끔씩 탁구해설을 섭외 받아 TV에 얼굴과 목소리로 나의 존재를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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