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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문화를 읽어 주는 남자 - ‘월간 토마토’ 편집국장 이용원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잠들곤 했어요. 잘 맞지 않는 주파수를 요리조리 맞춰, 내게 말을 거는 듯한 DJ의 달달한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스르륵 잠이 들어 있었죠.”

 

라디오가 그를 만났을 때
대전MBC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을 듣다 보면 ‘주말엔 뭐할까’란 코너가 나온다. 제목답게 토요일에만 들을 수 있는 코너로 유지은 아나운서와 이용원 ‘월간 토마토’ 편집장이 주말에 있을 소소한 문화 행사를 소개하며 오랜 친구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이용원 편집장은 일주일에 꼭 한 번씩 대전MBC 라디오국을 찾는다. ‘재밌게 살기 위해 안테나를 열어놓고 있으며, 규칙적인 일과를 싫어하며, 방송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지만 그의 방송을 듣다 보면 그 만큼 라디오와 어울리는 사람도 없겠구나 싶어진다.


“처음 코너를 제안받았을 때, 정중히 고사했죠. 무언가를 규칙적으로 하는 일을 잘 못 해요. 심리적인 부담 때문인가?(웃음) 하지만 라디오란 매체가 주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죠. 그렇게 1년 2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대전MBC 라디오국에 왔어요. 일요일에 교회를 찾는 신자처럼요. 하하.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코너를 마치고 나면 오히려 제가 좋은 기운을 얻거든요. ”

 

지인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평소와 다른 목소리와 화법을 들으며 ‘가증스럽다’고 농담을 건넨다며 겸연쩍게 웃지만 그 웃음 뒤에 자리한 대전에 대한 애정은 방송을 한 번이라도 청취한 사람이라면 다 안다. 공평한 아비의 모습이지만 대전시립미술관과 대전예술의전당의 대형 전시와 공연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소극장과 작은 문화공간들이 그에겐 더 아픈 손가락이란 것도 쉽게 눈치채고 만다. 그래서 그가 전하는 문화 소식은 더 의미 깊다.

 

대흥동 어느 골목의 작은 갤러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젊은 화가의 그림,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촘촘히 자리를 배치한 아담한 북 카페에서 열리는 북 콘서트… 낡고, 작고, 오래된 문화공간들, 작지만 의미 있는 공연과 전시들이 ‘그’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전해진다.

 

 

 

작지만 의미 있는 것들
한 때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우리 주변의 작지만 의미 있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누군가는 라디오와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며 잡지를 발행하고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꿈꾸는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자동차가 있는 한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 종이책 역시 줄어들겠지만 소멸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금은 인쇄 기술이 좋아져서 잉크 냄새가 나는 종이책은 없지만 우리는 그것이 불러오는 향수와 정감을 기억하는 세대죠. 그 따뜻한 정서에 목말라서일까, 최근 출판계의 성향은 20대가 주도하는 독립 출판 성향이 강해요. 아무 때나 음원을 다운 받고 어두운 곳에서도 e-book으로 책을 읽는 편리한 디지털 시대지만, 외로움도 공존하는 지금이니까요.”

 

주변의 우려와 달리 그가 발행하는 ‘월간 토마토’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토마토 식구도 늘어 지금은 정기구독자만 1000여 명에 이른다. 이 편집장은 그들과 함께 원도심의 문화를 재건하고 아직 이름을 알리지 못한 예술인들을 응원한다. 그래서 월간 토마토 문학상으로 발굴한 작가를 대중과 연결하고 갑천의 생태 도감을 만들며 대전여지도를 출간하는 일련의 고단한 작업도 그에겐 ‘재미있는 일’이다.


“문화예술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거나 많이 가진 혹은 많이 배운 사람들의 허영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죠. 시간과 재산의 유무를 떠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접해야 하는 영역이 문화 예술이란 인식이 확산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위와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골목 어딘가 숨어 있는 소극장의 작은 연극, 대안 공간에서 펼쳐지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예술가의 활동과 전시, 이용원 편집장은 시민들이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예술을 즐기는 행위가 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길 바란다. <정오의 희망곡> ‘주말에 뭐할까’로 청취자를 만나는 이유다.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