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송가사람들

거북이가 이기는 게임, 느림의 가치를 아는 그녀

‘느림’과 박미건 리포터. 쉽게 공통분모가 연상 되지 않는 단어가 그녀 입을 통해 나온다. 1분 동안 라디오를 통해 들려줄 현장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하루를 바쁘게 뛰어다니고 퀴즈를 내며 능청스럽게 답을 흘려놓곤 짐짓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새침한 얼굴로 TV에서 웃는 그녀가 어떻게 거북이일까, 싶다.

 

 

 

 

 

경제학도에서 방송인이 되기까지
“다른 리포터보다 시작이 늦었지만 대학생 때부터 준비했어요. 지방 라디오 방송국을 거쳐 작년 대전MBC 리포터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지금은 TV를 통해 시청자와 소통할 수 있어서 즐거워요. 느리지만 꾸준하게 달려와서 이런 기회가 온 것 같아요.”


경제학을 전공했던 박미건 리포터가 방송인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TV에 나온 쇼핑 호스트의 멘트를 흉내 내던 그녀를 보곤 “와! 잘하는데? 소질 있다”라며 손뼉을 치며 웃던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방송으로 진로를 잡은 딸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부모님 몰래 그간 모아놓은 돈으로 방송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평소 꾸준히 저축하던 습관 덕분에 만만찮은 수강료를 자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개인 통장을 만들어 저축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돈을 입금하면 내 이름이 적힌 통장에 도장이 콕콕 찍히는 게 기분 좋았어요. 그 나이에 돈 모으는 재미를 알아버려서 졸업할 때까지 쭉 통장 돈을 불렸죠.(웃음) 은행에서 주는 ‘어린이 저축왕’ 상도 받고, 당시 이사할 때 꽤 목돈으로 불어난 금액으로 이사 비용에 도움도 드렸어요. 부모님은 초등학생이 용돈을 모아 몇 백만 원으로 늘려 놓은 제게 놀라셨고,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어릴 적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돈을 쓰는 것보다 모으는 일을 잘한다며 웃는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니지만 조금씩 적금하듯 꾸준하게 목표를 향해 걸어왔을 미건 씨의 지나온 시간이 짐작됐다.

 

여행에서 만난 한 마디, 나를 자유롭게 만들다
“2년 전, 타 라디오 방송국 일을 그만두고 잠시 여행을 떠났어요.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재력에 비해 아주 낡고 초라한 자가용을 운전하는 것을 보고 ‘왜 이런 차를 타느냐?’고 물으니 ‘남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만 좋다면 남 시선은 No problem∼’이라며 쿨하게 답하는데 그 무신경한 답이 제 가슴을 쳤어요. 너무 많은 시선을 의식하며 나를 힘들게 몰아세웠던 나 자신에게 주는 답 같았거든요.”

 

 

 


그 흔한 관용구가 당시 슬럼프에 빠져 허덕이던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위해 보폭을 넓혔다. 서류 심사에서 여러 번 고배를 마셔도 꾸준히 문을 두드린 결과, 그녀는 대전MBC 리포터로 시청자와 만날 기회를 얻었다. 박미건 리포터는 현재 대전MBC 라디오와 TV를 오가며 그녀만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아침이 좋다>에서 ‘똑 부러지는’ 브리핑으로 한 주간 지역 소식을 전하고 특유의 유머를 MSG처럼 뿌려 퀴즈를 던지는 깜찍한 ‘퀴즈 걸’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개그우먼 뺨치는 그녀의 언변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방송에선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 조금 아쉽기까지 하다.

“아, 제가 흥이 좀 많은 편이라 주체 못 하고 실수했던 적이 있어요. 정통 시사프로그램인 <생방송 오늘>에서 좀 무거운 주제에 대한 네티즌 답글을 전하며 입으로 효과음을 낸 적이 있어요. ‘두구두구두구∼’라고. (잠시 침묵) 손으로 드럼까지 치면서……. 시사프로그램을 코미디 프로로 만든 ‘깨방정’이었죠. 그때 손지혜 진행자의 소리 없이 경악하던 얼굴이 떠올라 이불 킥을 몇 번이나 했는지. 그 뒤로 늘 자제하려 애씁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자’는 것이지 영혼까지 자유로워지자는 것은 절대 아니라며 박미건 리포터는 특유의 정돈된 목소리로 마무리 인사를 건넨다.


“편안하고 친근한,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리포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거북이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믿어요. 열심히 달리고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지금까지 박미건 리포터였습니다.”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