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의 역할
“얼마 전까지만 해도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계속됐잖아요. 그런데 그 더위에 비닐하우스에서 작업을 하고 계셨어요. 숨이 턱턱 막히는 그곳에서 다 자란 파프리카가 폭염 때문에 줄기가 말라 땅으로 뚝뚝 떨어져 있는데, 그 와중에 성한 것 하나라도 수확하려는 농부 얼굴에서 비 오듯 땀이 쏟아졌어요. 그 땀이 꼭 눈물 같아 속상했죠.”
조예원 리포터는 입술을 사리문다. <생방송 아침이 좋다> ‘생활 비타민’ 코너에 소개하려 취재를 나간 홍성 농장의 농부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홍성 농장에서 재배한 미니 파프리카는 껍질이 얇아 아삭하게 씹는 맛이 일품인 비타민 덩어리. 생김새도 귀엽고 당도도 높아 파프리카라면 질색하는 아이들도 두 손 벌려 반기는, 그야말로 ‘히트다!히트!’인 상품이다. 대전MBC 주차장에서 열리는 <충청남도 로컬푸드 푸른밥상 직거래장터>에서 매번 매진 사태를 기록하는 미니 파프리카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찾았던 농장에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농작물이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 나도록, 그분들이 이 작은 열매 하나를 수확하기 위해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땀을 흘리는지 정성껏 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농약 대신 돼지감자 달인 물로 자식처럼 키운 파프리카가 폭염 때문에 낙과해 소여물로 처리할 수밖에 없을 때 그 심정이 어떨까 싶었죠. 차라리 하우스 밖이 더 시원한 몹쓸 폭염이 원망스러웠어요.”
기특하게도 폭염을 이겨낸 파프리카는 더 달고 달았다. 농부의 땀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부터 그녀의 몫이었다.
넌 뭐가 보이니?
함께 촬영현장에 나가는 촬영감독이 조예원 리포터에게 늘 던지는 질문이다. ‘뭐가 보이니?’ 선문답 같은 질문에 현답이 나올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VJ가 구획한 프레임 안에서 작가가 미리 작성한 원고를 읽던 방식에 익숙했던 그녀는 처음에는 당황했고 두 번째엔 기가 죽었다. 심화 문제보다 어려운 질문을 매번 던지는 VJ가 ‘B 사감’ 같았다.
“매번 촬영 때마다 바쁘게 머리를 굴렸어요. 뭘까? 뭘 봐야 하는 걸까?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고 심지어 ‘저 감독님이 날 분명 미워하는 걸 거야’란 생각까지 들었어요. 아, 지금은 조금 보입니다. 조금. (웃음) 이젠 제가 먼저 머리가 아닌 눈을 굴려요. 뭐가 보이는지.”
리포터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왼손처럼 거들뿐. 현장과 시청자를 연결하는 교두보로서 자신이 어떻게 자리해야 할지 이제 답을 적을 수 있다고 조예원 리포터는 말한다.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그들을 카메라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 그리하여 자신보다 저들을, 저 곳을, 저 사물들을 더 기억하게 만드는 일이 자신의 몫이었다.
나에게서 답을 찾자
“‘나에게서 답을 찾아라’라고 평소 부모님이 자주 말씀하세요. 이제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아요. 촬영이 잘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저에게 달려있는 것 같아요.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대화하려고 노력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고, 진솔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워낙 활발한 성격 탓에 먹는 것도 예쁘기보다 엽기적으로 먹는 것에 자신 있고, 달리는 종목은 모두 좋아해 한시도 가만있지 못한다는 조예원 리포터. 한마디로 ‘비글과’다. 그런 그녀가 방송을 하면서 눈물 젖은 샌드위치까지 삼켜봤단다. 꾸중도 듣고, 반성도 하며 성장 중이라고 조금 얌전해진 ‘비글 강아지’가 웃는다. 웃을 때 예쁘게 눈주름이 잡히는 그녀. 폭염을 이겨낸 다디단 파프리카처럼 조예원 리포터의 내실이 영글어 간다.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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