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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가사람들

주중엔 기자, 주말엔 앵커로 만납니다

 

 

 

무엇을 시작해도 바쁠 것 없는 주말 오후, 분주한 발걸음으로 뉴스센터로 출근하는 이가 있다. 대전MBC 보도국 13년 차 기자, 이교선. 폭염으로 달궈져 에어컨도 제 기능을 못 하는 토요일 오후 5시부터 그의 일주일은 시작이다. 늘어지고 싶은 주말 출근, 그러나 이교선 기자는 담백하게 말한다. ‘남들보다 빠르게 시작하는 일주일’이라고.

 

 

기자의 마음을 앵커의 그릇에 담아
이교선 기자는 올 4월부터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로 활동 중이다. 주중엔 기자로 주말엔 앵커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매일 한편씩 기사를 보도국 데스크에 올려야 하는 기자들의 일상을 참고하자면 좀, 많이, 빡빡한 일주일을 보낼 수밖에 없다. 주말로 미뤄뒀던 일정을 토요일 오전 중에 소화한 뒤 방송국으로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뉴스 원고를 다듬는 일이다.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 같은 부담감보다 전문 아나운서만큼 뉴스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압박감으로 다가왔죠. 아무래도 발음과 목소리 톤 조절 등은 그들만큼 할 수 없겠지만, 기사 원고를 보며 기자 입장에서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앵커 멘트를 다듬는 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교선 기자는 입사했던 2004년에 두 차례 ‘이달의 기자상’을, 2011년 지역 기획보도 부문(하늘동네 이야기)으로 또다시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기자로서 사회 곳곳을 누비며 시원시원한 뉴스를 전하던 모습과 달리 앵커로 만난 이 기자는 그답지 않게 수줍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소심한 발언과 달리 뉴스를 전하는 그의 톤은 안정돼 있고, ‘현장에서 활약하는 기자가 전하는 뉴스’라는 점도 시청자에게 신뢰감을 준다는 주위의 평가다. 또한 말할 때마다 예쁘게 피었다 사라지는 보조개는 이 기자만이 줄 수 있는 쏠쏠한 매력.

 

앵커, 마운드에 홀로 선 투수
“카메라 울렁증이 있죠.(하핫) 혼자 카메라를 직시하고 뉴스를 전해야 하는 앵커는 투수와 닮았어요. 혼자 공을 던져야하는 부담감과 늘 싸워야 하는 외로움이 있어요. 그래도 외야수처럼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스태프들과 PD가 있으니 견디면서 공을 던질 수 있어요. 제 야구 포지션은 우투수 좌타자로 작년엔 6할 1푼 1리의 타율을 기록했죠.”

 

 

 


사회인 야구 동호회 ‘MBC 청룡 야구부’가 자신의 스트레스 탈출구라 소개하며 애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교선 기자는 남들이 다 아는 야구광이다. ‘디지털의 공해에서 자유롭고 싶어서’란 이유로 아직도 011로 시작하는 휴대 전화번호와 2G 단말기를 사용하는 이 기자는 화려한 기능과 번쩍이는 액정으로 무장한 최신 단말기엔 욕심이 없지만 타율엔 한없는 욕심이 생긴다며 허허 웃는다. 작년만큼 타율이 나오지 않는 것이 공을 고르지 못하는 성급한 볼카운트와 끝까지 공을 보고 치지 못하는 욕심 때문이란 자평 끝에, 그래도 ‘MBC 청룡 야구부’는 지난 주 4승째 승리를 거뒀다며 손뼉을 치며 자랑한다.


“MBC 청룡 야구부는 사회인 야구단 3부 리그에서 뛰고 있고, 회원 수가 20명 정도 돼요. 제 위안처인 곳입니다. 투수로 선발돼 만루 홈런을 맞고 강판 당했을 때도 있었어요. 머리가 멍해지며 ‘졌구나!’ 좌절했는데, 멋지게 역전을 했어요, 누가? 우리 청룡 야구부가. 하하.”


마운드에 섰을 땐 외로운 싸움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늘 팀과 함께였다. 영하 10도에서 입이 얼어 제때 입을 떼지 못해 방송 사고를 냈던 새내기 기자 시절에도 ‘혹독한 영하의 날씨에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기자’로 든든하게 수비 멘트를 날려 준 선배 앵커가 있었다.


“저도 이런 선배가 되어야죠. 뒤에 등판한 후배 기자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승부수를 던질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줄. 그러기 위해서 주중엔 기자로 주말엔 앵커의 모습에 충실해지려 합니다.”

 

안시언 |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