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 휴가 왔어요’라고 이야기하면 좀 화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취직도 안 되어서 ‘놀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에게도 조금 눈치 보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에서 반드시필요한 것이 쉬는 것, 즉 휴가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평소에 팍팍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어쩌다 한번쯤은 마음속에 작은 점 하나를 찍는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광고 문구가 유행처럼 번져가던 때가 있었는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돌이켜보면, 직업 인생 30년 동안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것은 몇 차례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 때문에’라는 것이 이유였는데, 지나고 생각하니 그것도 다 핑계였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기억에 남는 여행과 휴가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2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캐나다 북극 지역에 있는 레졸루트라는 섬에 여행을갔습니다. 미국 연수를 마치고 약간의 시간이 난 참에 별러오던 여행을 한 것입니다. 레졸루트는 그보다 5년 전에 ‘북극 취재’라는 임무를 띠고 여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방이 얼음과 눈으로 덮인 그 광활한 북극의 땅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찾았던 것입니다. 북극곰을 실제로 보기도 했고 ‘에스키모’라 불리는 이누이트 원주민들과 물개 사냥도 했습니다. 백인들만 사는 줄 알았던 캐나다 땅에 우리와 꼭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원주민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들이 수백 년 동안 그들만의 ‘수렵’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도 충격이었습니다. 여름이면 백야 현상으로 밤에도 아이들이 나와서 자전거를 타고 한밤중에 ‘마실’ 다니며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보다는 젊었던 그 시절 그 젊은이들과 어울리기도 했었지요. 들판에는 노란색 보라색 꽃들도 피어났습니다. ‘이눅띠뚝’ 언어로 전통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그 할머니는 이제 저 세상 사람이 되었겠지요?
그리고 2009년이던가, 킬리만자로 트레킹을 갔습니다. 천재 작가로 명성을 떨치며 1차 대전, 그리스-터키 전쟁, 스페인 내전 등을 취재 또는 참전했고 아프리카와 쿠바를 사랑했던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는다는 이유를 댔던 여행이었습니다. 1953년 퓰리처 상,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고 작가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헤밍웨이를 추억하며 5일 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나중에는 생각이 모두 없어질 것만 같았던 기억이 납니다. 때로는 그렇게 무작정 떠나는 것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휴가는 파키스탄 페샤와르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의 페샤와르는 아프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 날리는 아이(Kite Runner)’에도 등장을 하는 곳이지요. 취재 때 알게 된 페샤와르 대학교 교수의 초대로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탈레반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어 걸핏하면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정원과 맛있는 홍차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의 집 옥상에서 고소한 우유를 탄 홍차를 마시며 그의 친구들이 부르는 구성진 노래와 연주를 듣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밤에는 우연히 알게 된 경찰 간부의 경찰차를 타고 마약 단속을 나갔습니다. 단속을 끝내고 새벽 두 시 텅 비어있는 거리를 달리면서 들던 묘한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휴가는 우리 기억 속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줍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휴가를가기 위해 1년 동안 일을 한다고 하지요. 휴가를 다녀오면 일상은 여전히 그 일상이겠지만 우리는 더 이상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편안하고 느긋하고 어쩌면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들에게 휴가철이면 어디든 떠나라고 이야기합니다. 국내도 좋고 저축한 자금이 있다면 해외도 좋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면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상을 줄 필요가있습니다. 1년에 꼭 한 번의 호사,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할지도 모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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