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인간은 언어적인 존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과 언어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뜻이지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리의 삶은 말에서 시작해서 말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텔레비전을 켜는 일입니다. 스스로 말을 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지요. 텔레비전 산업에서 30년을 일 해왔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습관적으로 뉴스에 채널을 맞춰놓고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근의 중요 이슈는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하루의 일과 중 상당 부분은 말로 이루어집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일도 하지만 대부분 회의나 미팅, 식사 자리도 말로 이루어지지요. 그러니 ‘삶은 곧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삶이 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을 할 때 그만큼 숙고해야 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든가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 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격언들은 말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플루타크는 일찍이 “말 속에서 화자의 마음 상태와 성품, 성격이 드러난다(In words are seen the state of mind and character and disposition of the speaker)”고 설파했지요. 실제 품격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행동도 품격이 있고 저급한 말을 하는 사람은 행동도 본받을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곧 입법 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도 흥분 상태가 되면 시정잡배와 다름없는 말을 해서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말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평소에 그 뜻을 새기며 말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말이 술을 만나면 ‘사고’를 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가까운 사람들끼리 만나서 가볍게 한잔하는 저녁 자리는 생활의 활력소가 됩니다. 사무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지요. 상사들의 험담을 하기도 하고 옆 부서 직원들의 ‘루머’도 교환이 됩니다. 그런데 흔히 알고 있는 대로 도가 지나치면 사람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어버립니다. 평소에 차분하던 사람도 말이 많아지고 과격해지며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괴물’이 되고 ‘오바’를 할 위험이 생겨나는 순간입니다.
폭언을 하고 폭행을 하면서 일행의 즐거웠던 저녁을 악몽으로 만든 다음날 아침, ‘괴물’은 사라지고 숙취에 찌든 그(그녀)는 전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을 못하는지 아니면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것인지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부인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술은 사라져도 말은 남는다’는 것입니다. 술은 사라져도 행동도 남겠지요. 과거에는 술이 폭언과 폭행을 덮어주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술 때문에’라고 이야기하면 ‘그놈의 술!’이라고 하면서 그가 했던 폭언과 폭행들을 받아주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6년 지금, 술이 ‘만병통치약’이 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술 핑계를 대도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말 때문에 공무원 한 사람이 평생 쌓아오던 경력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본인이 백배사죄하면서 자신이 쏟아놓은 말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취지로 말을 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엘리트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의 경력이 끝난 것임은 물론 그의 자녀들과 부인, 부모 등 가족들도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개, 돼지’라고 한들 국민들이 개, 돼지가 되겠습니까만 ‘지도층 인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또 그것을 발설했다는 사실이 충격이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담는 그릇이 말이라고 하지요.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게 하는 것은 ‘교육’일 터인데,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교육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가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돌연변이’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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