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5일, ‘대전MBC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뉴스데스크>를 통해 보도된 기사 하나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국내 유일의 밀가루 전분 제조업체에서 썩은 밀가루로 전분을 만들어 유통했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발뺌하던 업체는 대전MBC의 후속 취재가 집요하게 이어지자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모든 공정 프로세스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3월에 새롭게 꾸린 대전MBC 보도국 경찰팀이 이룬 쾌거였다.
언론사의 경쟁력은 ‘취재력’이다. 지난 3월 대전MBC 보도국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사회팀을 경찰팀으로 새롭게 정비했다. 모든 사건이 1차적으로 모이는 경찰청을 보다 근접 취재해 ‘국민의 알 권리’를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한다는 취지이다. 10년 차 고병권 기자, 5년 차 이승섭 기자, 작년에 입사한 조명아 기자가 경찰팀의 구성원이다. 일명 캡(CAP)이라 불리는 경찰팀장 고병권 기자는 이를테면 야전사령관이라 할 수 있다. 고 팀장은 기사와 관련된 정보를 보고 받고, 취재 섭외와 조율 등 현장 실무를 총괄 지휘한다.
“캡이란 이름으로 지시하는 것은 피하고 싶어요. 워낙 이승섭 기자와 조명아 기자가 알아서 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취재를 하는 게 좋다고 봐요. 저는 그 방향을 조율하고 필요한 추가 취재에 대한 조언을 해 주는 정도입니다. 셋 모두 1980년대에 태어났어요. 80년의 시작과 중간, 끝에 우리가 있는 셈이죠.(웃음) 젊은이답게 열정적으로! 재미있게! 취재하고 있습니다.”(고병권)
극한 직업, 사회부 기자
‘극한 직업’, 어느 방송사에서 제작한 사회부 기자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제목이다. 조명아 기자가 담담히 들려주는 일과를 듣자니 그때 보았던 다큐멘터리 제목이 과장이 아닌 듯싶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일과는 수험생보다 부지런해야 했고, 취재와 기사 작성을 마치고도 출동 모드를 유지하는 모습은 잠시 휴식 중인 군인 같았다.
인터뷰를 하던 당일 새벽에는 조명아 기자가 사건 제보를 받고 급히 현장에 나가다가 휴대전화가 땅에 떨어져 장렬히 전사하는 일도 있었다. 초를 다투는 급한 상황에는 이렇게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 정도의 사고는 뒷전으로 미뤄둘 수밖에 없다.
“망가진 휴대전화를 뒤로 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제대로 된 영상이 없어 기사는 킬(제외되는 아이템) 됐어요. 인근 CCTV를 뒤지고 탐문 취재도 했지만 구할 수 없었죠. 아깝지만 이러면서 많이 배워요.”(조명아)
썩은 밀가루 사건을 취재했던 조명아 기자는 시원하게 웃으며 사망 선고를 받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경찰청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리고 인근 해장국 집에서 끼니를 때우며 방송국에서 씻고 쪽잠을 자는 기자의 일상을 듣자니 안방에서 편하게 시청했던 간밤의 뉴스가 달리 다가온다.
취재를 위해 분신술이라도 써야 할 것 같은 이들이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청춘의 꽃을 피워 다음 달에 ‘품절남’ 대열에 합류한다는 이승섭 기자. 부끄러워하며 손사래를 치는 이승섭 기자 옆에서 고병권 기자가 장난스럽게 ‘결혼식 보도’를 한다. 함께 고생을 하면서 쌓인 끈끈한 동료애 때문인지 선후배 사이의 위계 보다는 친밀감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우린 대부분 안 좋은 일로 사람들을 만나요. 사건과 사고가 있고 비리와 내부 고발이 있는 현장이니까요. 그래서 늘 ‘재밌게 일하자’고 구호처럼 말하고 다짐해요. 물론 우리 팀이 재밌게 일할 수 있는 건 최혁재 보도국장님 이하 선배님들의 지원과 격려 덕분이죠. 사랑합니다, 선배님들!(손 하트)”(고병권)
아직도 어려운 이름, 취재원과 나
그러나 어찌 사건 현장 취재를 ‘재미있게’만 했겠나. 이번 단독 보도를 위해 파헤친 밀가루 제조업체로부터는 (고발하기엔) 수위가 애매한 협박 메일을 ‘듬뿍’ 받았으며 취재내내 불안에 떨던 내부고발자를 안심시키고 옳은 일을 하는 것이라 설득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고단한 작업이었노라고 조명아 기자는 소회를 밝힌다. 옆에서 이승섭 기자도 한마디 거든다.
“제일 어려웠던 취재원과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어요. 2013년 발생한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사건’이었죠.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진 취재였는데 실종된 아이들이 시체로 발견되고, 취재를 위해 장례식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열하는 유가족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사연을 캐물어야 하니... 그런데 근처에 계셨던 한 여성이 상세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셨어요. 이러저러해서 이런 상황까지 왔다며 설명 끝에 영정 사진 하나를 가리키며 저 학생의 엄마라고 밝히더군요.(침묵) 인터뷰를 방송에 내지 못했어요.”(이승섭)
‘썩은 밀가루 특종’에 이어 23일 대전MBC가 단독 보도한 ‘대전 대신학원의 교사 부정 채용 특종’까지, 연이은 특종 행진을 하고 있지만 특종을 위한 특종이 아닌 어둡고 추운 곳에서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위해 취재한다는 이들, 대전MBC 경찰팀 기자들이다.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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