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나를 먹여 살리지요”
87세의 현역 베이티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스탄불 공항 부근 그의 식당에서였습니다. 식당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딴 ‘베이티’입니다. ‘베이툴라’라는 그의 이름을 애칭으로 줄인 것인데, 아랍어로는 ‘나의 집’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터키는 터키어를 쓰지만 아랍어와 겹치는 단어도 많이 있습니다). 3층 건물의 식당은 넓이가 3천 제곱미터에 이를 듯한데, 다양한 크기의 홀로 구성되어 있고 메인홀에서는 5백 명까지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식당을 들어서면 각종 선물로 전시된 장식장들이 눈길을 끕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이 남긴 가운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리비아 가다피의 시계도 눈에 들어옵니다. 가다피의 아들이 식사를 하러 왔다가 벗어준 것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에서 보내온 선물의 종류는 수 백 가지에 이릅니다. 머그잔, 유리컵, 장식용 접시 등에서부터 시계, 금귀걸이, 단검, 지폐, 향수 등 고가품까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과 기업인들이 남기고 간 물건 가운데는 5만 원 권 지폐도 보입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선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벽을 채운 액자들에는 베이티를 거쳐 간 세계의 명사들이 활짝 웃는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물론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압둘라 요르단 국왕,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 리셰녠 전 중국 국가주석 등 정치인들과 ‘마르짜 강변의 추억’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가수 실비 바르땅과 찍은 사진들도 걸려 있습니다. 그들 인생에서 가장 화려했던 시간에 이스탄불 베이티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촬영한 사진들은 베이티의 역사이자 그들의 화려한 추억이기도 하겠지요. 베이티는 맛있는 케밥을 먹고 흐뭇해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고, 그것을 마케팅으로 활용하면서 베이티의 가치를 한층 상승시켰습니다. 베이티에서 식사를 하는 고객들은 카터 대통령, 고르바초프 대통령, 압둘라 국왕 등의 반열에 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할 것입니다. VIP들이 남긴 선물을 보고는 자신도 무엇인가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도 할 테지요.
베이티 식당은 최근 발생한 테러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듯 보였습니다. 터키에서는 최근 세 건의 자살폭탄 테러로 관광객이 급감했습니다. 그랜드바자르에서 만난 상인들은 매출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울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베이티 식당은 손님으로 넘쳐났습니다. 오후 여섯 시가 되면서 들어오기 시작한 손님들은 7시 무렵이 되자 1천 석에 이르는 자리를 거의 다 채웠습니다. 베이티는 자신의 식당은 관광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사업상 만나야 하는 비즈니스 고객이 많고 또 이스탄불을 방문할 때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삼시 세끼는 반드시 먹어야 하고 여행자들에게 우선순위에 있는 식당이라면 베이티의 식당이 테러와 무관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베이티에게 식당의 성공 비결을 물어보았습니다. 질문을 하면서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것처럼 오크 나무 숯불구이 케밥이라는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었다든가 유명 고객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했다든가 하는 답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전혀 뜻밖의 답이 나왔습니다. “저는 고객이 저의 밥을 먹여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객이 저의 집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그의 경영철학의 핵심은 ‘고객만족’에 있었던 것입니다. 1945년부터 지금까지 고관대작이든 말단사원이든 그의 집에 들어오는 순간 베이티의 고객으로서 최선의 대접을 받게 된다는 서비스 정신이 오늘날 베이티를 세계적인 식당으로 만들었던 것이지요. 물론 숯불로 구운 케밥은 식당이라면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고객이 남기고 간 선물들은 전시물로 남김으로써 또 다른 형태의 명물로 탄생했던 것입니다. 아랍에미리트의 에미르가 보낸 명품 선물박스에는 최고급 향수가 특별 제조된 크리스털 병에 담겨있었지만 그 모든 선물들을 전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대전MBC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다시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1층 홀로 들어갔습니다. 87세의 노신사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하이!’라며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식당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최고의 대접을 받은 손님들은 베이티라는 이름을 따뜻하게 안고 나갈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고객이 나의 밥을 먹여준다는 철저한 ‘겸손철학’만 있으면 성공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아픈 반성이 베이티 식당을 떠난 뒤 한참까지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