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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그와 그

그와 그

지난 4월 23일 뉴스를 보던 중 한 화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한 젊은이와 마주앉은 모습이었습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이 직접 고해성사를 주었다는 것인데, 청바지에 푸른 면 티셔츠를 입은 청년은 뜻밖의 상황에 감격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11시 30분쯤 성 베드로 광장에 예고 없이 나타났고 다른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간이의자에 앉아 16명의 청년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다고 합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황과 함께 앉아있는 청년은 배낭을 메고 있는데, 어쩌면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타국의 여행자일지도 모릅니다. 저 멀리에는 운집해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이 광경을 구경하려는 사람들과 고해성사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어느 날 여행을 하던 길에 교황을 만났다면 이들에게 얼마나 큰 인생의 축복이 되겠습니까.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갑작스런 실직을 당해서, 어쩌면 불치의 병에 걸려서 바티칸까지 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16명의 젊은이들은 교황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른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보통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교황의 모습은 이채롭습니다. 그는 아무리 앱(application)을 업데이트해도 사랑 안에서의 자유와 위엄은 얻을 수 없다면서 스마트폰 시대의 행복론을 제시하기도 했지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행’으로 잘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기행’으로 치자면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소년원을 방문해서 재소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는가 하면 신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지난 2013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70세의 렌조 조코라는 신부가 교황에게 자동차를 선물했습니다. 30년 전에 출고된 낡은 르노 자동차였지요. 자신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때 쓰던 마일리지 30만 킬로미터의 자동차였습니다.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에게 상징적인 선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교황청에 자동차 기증의 의사를 전했고 교황은 이를 받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인수받은 교황은 조코 신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그가 사는 동네까지 갔는데, 낡은 자동차에서 교황이 내리자 동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신부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받은 교황은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교황청까지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소탈한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에 경호팀이 쩔쩔매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날도 경호팀이 힘들었겠지요.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경호팀을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지인에게 들은 한 고관의 이야기는 ‘고관’들의 전형적인 행태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특히 프로토콜, 의전을 따지는 인물인데 그가 열차를 탈 때마다 경호팀이 곤욕을 치른다는 것입니다. 열차 바로 앞까지 차를 대라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절차가 까다롭고 시민들의 눈도 있어서 경호, 의전팀이 혼이 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요인들의 경우에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경호 절차가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의전을 위한 의전, 경호를 위한 경호라면 문제는 다릅니다. 자리에 따른 의전 절차가 있겠지만 여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자리에 넘치는 의전이라면 그는 시쳇말로 ‘오바’하는 것입니다.


수시로 ‘낮은 곳’으로 와서 ‘보통사람’들을 만나는 교황이지만 아무도 그를 얕보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그는 더 높아지고 그를 우러러 보는 사람들은 더 많아집니다. 그의 행적 자체가 고귀하기 때문입니다. 일생을 낮은 곳에서 보냈던 테레사 수녀는 성녀가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호팀을 힘들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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