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청천>, <유성화원>, <꽃보다 남자>와 같은 대만 지상파 드라마들이 아시아 시장을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10년 전이다. 대만 지상파 방송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광고수익과 판권 독점으로 호황을 누렸고 머지않아 다가올 몰락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솔직히 필자 역시 이번 연수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대만의 지상파 TV 몰락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그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겠거니 미루어 짐작했다. 그 짐작은 호텔에 도착한 후 TV를 켜는 동시에 여지없이 빗나갔다.
잘 나가던 대만의 지상파 방송 상황이 이렇게까지 붕괴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만 정부의 방송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케이블 채널에는 특혜를 주고 지상파 방송에는 낡은 규제를 여전히 들이댄 것이 이 같은 방송 산업 붕괴를 불러온 것이다.
그 시작은 1999년. 케이블 채널에 광고시간을 늘려주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면서 불과 6~7년 만에 케이블채널이 100여 개로 늘어났고, 광고수입은 지상파의 5배를 넘어섰다. 대만에는 현재 5개의 지상파 채널이 있지만 열악한 재원 탓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하면서 시청자로부터 외면을받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우리의 방송 산업이 1999년의 대만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현지에서 만난 왕왕그룹(쌀과자를 만들어 성장한 대만의 대기업)은 신문, 지상파, 케이블, 등을 소유하고 있는 미디어 그룹이지만 투자를 통한 방송 콘텐츠 개발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검증된 외국의 콘텐츠를 수입하는 것이 경제성 면에서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대만의 방송문화 콘텐츠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만의 다른 케이블 방송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콘텐츠 경쟁력을 잃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린린윈 국립대만대학교 교수는 대만 정부의 방송정책 방임제는 재벌이 언론을 지배하는 폐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방송의 우수한 인력이 중국으로 흡수되어 방송 산업 공동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보다는 기업의 사익을 위해 방송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 방송 산업이 빈껍데기만 남아 문화 자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대만이 문화주권을 잃어버리기까지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상파 방송의 몰락은 문화산업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녀는 대만의 지상파 몰락의 피해를 말하면서 한국 지상파 방송사가 겪을 위기에 대해서도 깊이 우려했다.
그러나 우려스럽게도 IPTV, 종합편성채널 등 다양한 형태의 지상파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대만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상파 방송의 몰락은 문화산업 전반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방송의 문제만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만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지상파 방송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은 물론, 지상파 스스로 지속가능한 사업다각화를 통해 생존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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