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EO의창

야구장

 

난생 처음 야구장에 갔습니다. 8월 21일 한화 이글스와 KT위즈간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9회까지 경기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스포츠만큼 정직한 게임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기장에서 드러나는 것은 퍼포먼스에 불과하며 경기의 결과는 사실 경기장에 오기 전에 이미 결정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어떤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지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운이 좋아 이기는 게임은 없다는 겁니다. 그룹 경기는 거기다가 한 가지 요인이 더해져야 합니다. 모든 선수들이 그 조건을 다 충족시켜야만 경기는 승리한다는 것이지요.


투수는 긴장된 듯 공을 던지기 전에 손 안에서 공을 이리저리 굴려보고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이 타자를 향해 던집니다. 준비된 타자는 멋지게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쳐내지요. 젊다고 무조건 유리한 운동은 없습니다. 물론 평균적으로는 비축된 힘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만 노련한 경험이 만들어내는 작품도 볼만 합니다. 이번 경기에서 ‘노장’ 조인성은 40세의 나이에 연타석 홈런으로 팀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까요. 상식을 뒤집는 일이 생길 때마다 관중들은 감정이입을 하면서 열광합니다. 직장에서 나이 들었다고 뒤로 밀리는 이들은 조인성이 홈런을 때렸을 때 더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았을까요?


야구의 묘미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가 말했던 것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거지요. 승부가 끝난 것처럼 보인 경기가 9회 말에 뒤집힐 수 있는 것처럼 야구는 9회 말에 시작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다 끝난 경기를 뒤집어엎은 사례는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9회 역전 사례는 1901년 4월 24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밀워키 간의 경기였지요. 타이거스는 9회에 10점을 얻어서 밀워키를 14대 13으로 물리쳤으니 얼마나 큰 희비가 엇갈렸겠습니까? 그러니 잘 나간다고 느슨해지거나 해이해지거나 오만해지면 그 순간 상대방은 내 가슴을 향해 마지막 일격을 내리칩니다.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신중하게 최선을 다해야만 승리를 꽉 붙잡을 수 있겠지요. 21일 게임에서도 경기의 진실은 드러났습니다. 만루에서도 점수를 못 내고 물러나야 하는 경우가 있는 겁니다. 한 방만 제대로 쳐주기만 하면 되는데 상대가 잘 막으면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스포츠에서도 때로는 승부 조작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스포츠 경기에서 승부는 냉정합니다. 수많은 관중이 보는 앞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승부의 세계에서 오직 한 가지만 빛을 발휘하는 겁니다. 그것은 실력입니다.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긴장을 풀고 마음의 무게 중심을 잡고 그저 갈고닦은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정신력을 내보이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란 것이지요.


‘마리한화’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한화의 경기는 김성근 감독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한화가 그동안 꼴찌만을 했기 때문에 한화의 꼴찌 탈출은 힘 빠진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고 있나봅니다. 잘 나가는 사람이 잘하는 것은 어찌 보면 뉴스가 아니겠지요. 그러나 꼴찌가 좋은 성적을 내면 더 멋있어 보입니다. 1942년생 73세 나이에 현역으로 선수들을 관리 감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김 감독의 말은 철저하게 선수를 만들어나가는 그의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선수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그들을 혹사시키는 김 감독의 훈련 방식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발전하게 만들고 승리하게 만들면서 그들에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심어준 결과 한화 이글스가 꼴찌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팬들의 응원을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선수들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목청껏 소리 지르며 응원을 하는 그 자발적인 힘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보문산의 호루라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박 모씨는 이미 인터넷에서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마침 우리 앞쪽에 박 씨가 자리를 잡아 ‘응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가 있었지요.


아무튼 깨끗한 승부의 세계를 보는 데는 스포츠만한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계에서는 ‘음지의 세계’가 있지요. 뒷거래도 있고 커튼 뒤도 있고 밀실거래도 있다고 합니다. 왜곡, 조작, 아부, 뇌물, 청탁의 세계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승부의 세계는 투명하고 냉정합니다. 현실과 다른 투명한 승부가 펼쳐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의 삶도 스포츠에서처럼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력을 겨룰 수 있는 투명한 승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휴가철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을은 연초에 계획했던 것을 수확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CEO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나지 않아 더 멋있는 사람  (0) 2015.09.07
‘숙제’ 뒤에 ‘축제’  (0) 2015.08.31
불꽃놀이  (0) 2015.08.18
그 사람에게는 단 한 번뿐인  (0) 2015.08.10
휴가 이야기  (0) 201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