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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불꽃놀이

 

8월 14일 저녁, 대전 엑스포시민광장에서는 광복 70년 기념 축제가 열렸습니다. 유명 가수들이 출연한 1부 콘서트에 이어 30분 넘게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졌습니다.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불꽃놀이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환상과 꿈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저는 불꽃놀이만 보면 전쟁이 생각납니다. 1991년과 2003년 이라크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쟁 때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취재를 했었지요. 특히 1991년 걸프전은 난생 처음 현장에서의 전쟁경험이었습니다. 새벽 한 시 반, 서울과의 시차 때문에 아침용 기사를 불러주고 막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런데, 쿵 쾅 팍 콰쾅 파파팍, 온갖 소리의 굉음과 함께 본능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창문을 열자 하늘에서 엄청난 불꽃이 여기저기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기이한 느낌과 공포심이 함께 일어났을 것입니다. 당시 CNN의 기자들은 생방송에서 걸프전의 첫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지요. “오늘 밤 바그다드의 상공은 포탄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바그다드 전역이 환하게 밝혀진 가운데 포탄이 상공을 날고 있습니다. 포탄의 흔적들이 허공에 남아있습니다. (존 홀리만)” “사방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고 있습니다. 목표물이 어딘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공항이나 군부대인 걸로 보입니다. (피터 아넷)” “시청자 여러분, 이 광경을 설명하려면, 독립기념일에 워싱턴탑 주변에서 하던 불꽃놀이의 화려한 피날레 같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버나드 쇼)”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면서 전쟁을 떠올린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저한테만 벌어지는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이라크 전에 파병됐던 수많은 미군 참전용사도 불꽃놀이를 보면 전쟁을 떠올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STD)를 앓고 있다고 하네요. 전쟁 취재 이후 저는 단 한 번도 불꽃놀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폭탄 터지는 굉음과 함께 파괴된 건물들, 팔다리가 잘려나간 사람들, 울부짖는 여성들, 그런 장면들이 함께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14일에 경험한 불꽃놀이 때는 전혀 다른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광복은 현실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전후 세대에게 태극기나 애국가는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라, 국가, 정부, 국민, 이런 개념들이 이라크에는 절박하고 절실한 꿈입니다. 1991년 이후 이라크에는 안정적인 정부가 없었습니다. 수니, 시아, 쿠르드 등 인종과 종파가 다른 집단들이 권력 투쟁을 계속해왔고, 급기야 종교의 탈을 쓴 잔혹한 이슬람국가(IS)가 나라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처형과 참수로 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는 이슬람국가를 중앙 정부는 궤멸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새긴 별도의 ‘국기’도 가지고 있습니다. 쿠르드자치정부 역시 그들만의 깃발을 가지고 있지요. 그러니까 한 나라에 깃발 세 개가 나부끼고 있는 것입니다.


불꽃놀이를 보면서 광복이 참으로 절실하고 절박하게 다가왔습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현실이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1991년에 태어난 이라크의 아기는 이제 24살의 청년이 됐습니다. 그에게 조국은 전쟁으로 시작되어 전쟁이 여전히 진행형인 곳입니다. 1991년 걸프전, 이어진 쿠르드와의 내전, 수년간에 걸친 경제제재, 2003년 이라크 전쟁, 미군 주둔, 미군철수에 이어진 내전, 이슬람국가의 공포정치와 내전... 그에게 유년은 전쟁이고 사춘기는 실종되었으며 청년기는 실업과 공포일 뿐 미래는 납치당했습니다. 책 대신 자살폭탄 띠를 두른 청소년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광복 70년을 맞는 오늘, 조국이 감사하고 적어도 38선 이남에 하나의 국기, 태극기를 가진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저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불꽃놀이를 환호하며 볼 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전쟁 공포에서 멀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안보는 굳건해야 하지만 우리가 가진 안정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불꽃놀이 축제에서 마음껏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태극기를 마음껏 흔들지 못했던 것이 불과 70년 전의 일입니다. 애국가, 태극기, 광복 70주년이 참으로 감사한 오늘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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