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사모광장

메르스가 남긴 교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MERS)가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필자가 의료원장으로 재직 중인 건양대병원에서도 메르스 환자가 발생해 지난 2개월 동안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확진자가 나타났고 사망자도 추가돼 지역사회를 집어삼킬 듯 그 위세가 엄청났다.


메르스와의 전쟁은 우리 병원에 메르스 의심자가 입원했다는 전화 연락을 받은 5월 30일 부터 시작되었다. 그동안 수차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고 냉철한 판단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병원의 경제적인 손실이 크더라도 무조건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범위를 넓힐수록 더 많은 의료진과 직원이 격리됐고, 병동과 중환자실, 심지어 응급실까지 폐쇄조치가 이루어졌다. 150억 원이 넘는 경영손실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지역사회 감염 차단’이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낀다.

의료진도 한마음으로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소방관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출하기 위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방호복에 의지한 채 격리병동에 투입돼 환자들을 돌봤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한 호흡기내과 교수는 환자를 돌보다 디스크가 터져 다리에 마비가 온 상태에서도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본인도 감염될 수 있는 상황에서 공포심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오로지 환자 곁을 지킨 의료진과 지역사회 감염을 막기 위해 힘을 모아준 직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메르스 완전 종식을 앞둔 시점에서 지난 몇 개월을 뒤돌아보면 안타까운 부분도 많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의료전문가들이 메르스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광범위하게 전염시키는 공기 전염이 아니라고 해도 일부에서는 계속해서 그 가능성을 주장해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했다. 발열사실이나 경유 병원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등 부정확한 정보제공을 하거나 자택격리중인 사람이 골프장을 방문하는 등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부족한 시민의식으로 어처구니없는 문제가 발생할 때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얻은 것도 있다. 감염병을 극복해낼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시민단체와 기업 등에서는 물품을 후원해 주시면서 의료진에게 힘과 용기를 전해주셨다. 특히 언론의 역할과 중요성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여론이라는 것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때로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언론에서 그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대전MBC 뉴스는 의료진이 메르스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집중 취재해 의료진에게 큰 힘이 되었고, 의료진 가족들이 주위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해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아주었다. 또 대전MBC <시사플러스>에서는 대전지역 메르스 발생 이후의 상황과 앞으로의 과제 등을 심층 취재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메르스는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부와 지자체, 언론, 의료기관, 시민단체 등 모두가 힘을 모으면, 국민적 위기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선물로 남겼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제2의 메르스가 우리에게 닥쳤을 때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의료시스템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