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처음 MBC 전파가 터져 나왔을 때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CM송’이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로 유명한 구봉서, 배삼룡 코미디언들의 라면 ‘CM송’은 지금까지도 곧잘 회자된다.
어쩌면 방송 광고의 효과가 가장 좋았을 때가 그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만큼 방송에서 광고를 듣는다는 것은 신기할 만큼 낯선 문화였던 것. 물론 그것은 소비 증가의 효과가 커서 지역경제에도 많은 이바지를 했다.
하지만 일선 신문기자로 활동했던 나는 대전MBC의 입체적이고 현장 중심적인 보도체계가 가장 부러운 것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박천규 씨(前 대전MBC 상무)는 나와 같은 시기 경찰 출입을 했는데 어찌나 새벽부터 현장을 누비는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흔히 아이스크림통이라고 부르던 녹음기를 메고 어디든 달려가 마이크를 내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렵 특별한 열정이 넘쳤던 것 같다. 그렇다. 새해를 맞아 아쉽고 필요한 것은 매스컴 종사자들에게 있어 열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것을 특히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절박하게도 무력감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때, 그 침몰의 현장을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오직 무력감, 그것이었다.
지난 봄부터 온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 사태도 우리에게 마스크를 쓰는 것 외에 우왕좌왕, 무력감뿐이었다.
국회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여의도 1번지’, 국회의사당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무기력의 상징이다. 가계 부채가 1,000조에 이르는데다 취업도 하기 전에 신용불량자가 돼버린 20만 명의 젊은이들, 그 축 처진 힘없는 청년실업자의 어깨를 보면 내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꼭 죄 지은 심정이다.
도대체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취업을 못해 거리를 헤매는 사람이나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모두가 ‘미생(未生)’일 뿐이다.
도대체 사다리는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큰 선박에는 밧줄로 만든 사다리가 선체 밖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재난을 당했을 때 이 밧줄 사다리는 선원들에게 큰 희망이 되어준다.
흔히 옛날부터 선박의 밧줄 사다리를 ‘야곱의 사다리’라고 불렀다. 구약 성경에 야곱이 형 에사우에게 미움을 받고 광야로 도망쳤는데 하루는 돌베개를 베고 자다 꿈을 꾼다. 천사들이 하늘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보이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꿈이었다. 그 후 이 사다리는 쫓기며 돌베개를 베고 자야 하는 인간에게도 구원과 희망이 있음을 말해 왔고 화가들의 손을 거쳐 아름답게 이미지화 됐다.
그렇게 사다리는 삶의 희망이며 꿈이다. 우리 매스컴 종사자들이 이 시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바윗덩이 같이 짓눌러 오는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야곱의 사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열정이 필요한 것이다.
어느 송년회 좌석에서 누가 물었다. “대전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지금처럼 ‘어둡다’는 탄식만 할 게 아니라 그 탄식을 물리치고 대전에서 유럽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젊은이들의 열정이 있으면 대전은 살아날 것이오. 그 열정을 일으키는 일을 방송이 해주었으면 딱이오!”
그렇다. 처음 대전MBC가 문을 열었을 때의 그 숨 가쁜 열정이면 대전을 온통 뜨겁게 달굴 수 있을 것이다. 사건, 사고 그런 잡다한 뉴스 보다 삶의 이야기 속에 배어있는 진수를 꺼내는 그런 열정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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