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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내로남불

내로남불

제가 속해 있는 한 사회관계망(SNS)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방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임과 관련한 공지나 회원들의 경조사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최근에 이 방에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 회원이 어떤 시사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올렸는데, 이어서 다른 회원이 반박하는 글을 올렸고 이 공방이 격화되어 ‘난타전’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급기야 총무가 등장해서 “이 방은 회원들이 모임 공지와 경조사 등 최소한의 소식만 올리도록 만들어진 것이니 정치적인 의견 등은 올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을 올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총무는 당초 그 방을 만든 취지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규칙을 어겼다는 점을 지적하고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더 큰 부정부패를 비판할 자격이 있겠느냐고 개탄했습니다. 물론 총무의 이 같은 말에도 찬성과 반대의 글들이 줄을 이어 논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편을 들 생각은 없습니다. 둘 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저는 그 총무가 올린 글 가운데 “작은 규칙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더 큰 부정부패를 어떻게 비판하겠느냐”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은 꽤 자주 일어납니다. 제가 입사할 때만 하더라도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일상사였습니다. 복도에는 커피 자판기와 함께 담배 자판기도 버젓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흡연자들의 ‘권력’이 워낙 막강하여 소수파인 비흡연자들은 어쩔 수 없이 간접흡연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흡연의 부작용이 폭넓게 인식이 되면서 사무실 내의 흡연은 금지되었고 건물 내에는 ‘흡연구역’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낮 시간에는 ‘금연’ 규칙이 잘 지켜지다가 사람들이 퇴근하고 야근 체제로 전환이 되면 으레 사무실 흡연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규칙을 어기는 흡연자들이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사를 방송할 때는 흡연의 폐해와 함께 사무실 내 금연 규정을 엄격히 지켜야 한다고 사뭇 진지하게 강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말 따로 행동 따로’였던 것이지요.



"작은 규칙도 지키지 못하면서

사회 정의와 개혁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언젠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의 강연회에 갔다가 크게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사회 개혁을 위한 운동을 계속 벌여왔고 그가 주창하는 이론이 합리적이었기에 저 역시 그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회개혁 운동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한다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그 자리에 갔습니다. 호텔의 대규모 연회장에는 그로부터 통찰력을 얻기위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와 기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기대는 시작부터 어긋났습니다. 그는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서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지각의 이유는 언제나 다양합니다.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지요. 그렇게 시작한 강연의 내용은 좋았습니다. 영감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열강에 도취한 탓인지 당초 예정되었던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된 것입니다. 10분, 20분, 30분이 지나서야 강연은 끝을 맺었습니다. 


그 사이 행사를 주최한 사람들은 초조해지면서 발을 굴렀습니다. 모임이라는 것은 예정한 순서가 있는 것인데, 하나가 어긋나면 다음 순서에도 영향을 주게 되니까요. 강연이 10분을 초과하면서 주최 측에서는 강연을 정리해 달라는 쪽지까지 전달했는데 연사는 무려 20분을 더 넘겨서야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작은 규칙도 지키지 못하면서 사회 정의와 개혁을 어떻게 이야기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애매한 규정 때문에 규정을 지키기 곤란한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법을 다 지키면 회사가 망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쉽게지킬 수 있는 규칙마저 지키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우습게 만듭니다.


어제(8월 23일) 있었던 민방위훈련에서도 일부 시민들은 공습경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에 참가하지 않거나 짜증까지 냈다고 신문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민들도 자신이 피해를 입는 범법 행위를 경험한다면 ‘사회 정의’를 부르짖게 되겠지요. 그래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는 말이 최근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단어가 되었나 봅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