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EO의창

‘데임’ 침팬지, 제인 구달

‘데임’ 침팬지, 제인 구달

며칠 전 국회에서는 재미있는 강연이 열렸습니다. ‘침팬지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인 구달이 아시아기자협회가 주최한 <에코토크>에 초청을 받아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대담을 나누었는데요, 그가 평생 이룩한 업적 때문인지 의원회관 대회의실 500석 좌석이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는데, 대담 시작 시간에 맞춰서 나타난 모 의원은 끝내 자리를 찾지 못해 강연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1934년생이니까 올해 나이 83세, 그럼에도 구달 박사는 노인 느낌을 주지 않은 세련되고 깔끔한 모습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메시지에는 침팬지에서 시작해 환경보호주의자로 성장한 자신의 일생이 담겨 있습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어요.” 먹고, 입고, 구입하는 것 등 삶의 방식을 바꾼다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전 세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1년에 300일 이상을 집에서 머물지 않고 여행을 하며 보낸다고 합니다.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려는 것일까요. 구달은 채식주의자입니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루 두 끼를 햄과 베이컨,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것은 모순이 아니냐고 설파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해 극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인 구달의 경우에는 그랬습니다. 어릴 때 구달의 아버지는 딸에게 천으로 만들어 속을 채운 침팬지 인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친구들은 침팬지 인형이 무서워서 그녀가 악몽을 꿀 거라고 했지만 그 침팬지 인형은 구달의 일생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침팬지 인형에 대한 사랑은 동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녀는 23살 때인 1957년 친구의 농장이 있었던 아프리카 케냐를 방문합니다. 인형 침팬지와의 인연이 살아있는 침팬지로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고생물학자 루이스 리키의 조수로 일하면서 제인 구달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침팬지를 관찰했고 그녀는 두 가지 발견을 하게 됩니다. 침팬지가 도구를 쓸 수 있다는 사실과 초식동물로만 알려져 있던 침팬지가 육식도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구달이 침팬지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 침팬지가 흰개미를 잡아먹는 장면을 포착한 것인데요. 침팬지는 풀잎을 흰개미가 사는 땅굴 입구에 갖다 대놓고 흰개미가 풀잎에 기어오르면 기다렸다가 잡아먹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침팬지가 풀잎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흰개미를 먹는 육식을 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어린이를 어떤 환경에 노출시키는가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사실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구는 오직 인간만 사용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어서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Man the Toolmaker)’이라는 용어까지 있었으니까요. 루이스 리키는 구달의 발견에 “우리는 이제 ‘인간’의 정의를 바꾸든가 ‘도구’의 정의를 바꾸어야 한다.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라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구달의 관찰법도 혁명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구를 위해서는 관찰 동물에 번호를 붙이지만 구달은 침팬지들에 사람처럼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이 같은 연구법은 연구의 객관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있기도 합니다.


침팬지의 행동에 대한 그녀의 발견 덕분에 그녀는 대학교 학사 학위도 없었지만 캠브리지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제인 구달의 관찰과 연구 덕분에 인류는 침팬지도 사람처럼 애정을 갖고 애정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점차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넓어져서 이제 그녀는 대표적인 환경보호론자가 되었습니다. 일생 중 가장 잘한 일은 <뿌리와 새싹(Roots and Shoots)>을 설립한 것이라고 합니다. <뿌리와 새싹>은 1991년 탄자니아에서 청소년 12명과 시작한 풀뿌리 환경보호 네트워크인데요. 지금은 140개국 8,000여 개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제인 구달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를 어떤 환경에 노출시키는가가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구달의 경우에는 침팬지 인형 하나가 그녀를 침팬지 학자로 만들었고 나아가 환경 보호를 위한 대규모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했으니까요. 그녀의 업적을 기려 영국 왕실은 그녀에게 ‘데임(Dame)’이라는 칭호를 수여했습니다. 귀족 부인에게 붙이는 칭호이지요. 여든셋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고운 그녀의 얼굴과 단정한 맵시는 그녀를 여전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게 합니다. 1957년부터 2017년까지 60년 동안의 업적을 평가하여 만해축전추진위원회는 제인 구달을 올해 만해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결정해 8월 12일 시상했습니다.



대전MBC 사장 이진숙

'CEO의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공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0) 2017.09.01
내로남불  (0) 2017.08.28
히잡과 미니스커트, 그리고 소셜미디어  (0) 2017.08.14
정신력 강한 사람들의 18가지 습관  (0) 2017.08.04
잘 산다는 것  (0) 2017.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