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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창

잘 산다는 것

잘 산다는 것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아마도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라고 불렸지만) 때가 아닌가 합니다만, 당시에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잘 산다’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잘 산다’는 말은 주로 ‘잘 사는 아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부잣집 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저 아이 집은 잘 산다”든가, “선생님이 쟤를 잘 봐주는데, 잘 살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사용되었는데, 당시 ‘잘 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성공을 의미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이, 제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60년대는 6.25전쟁이 끝나고 10년이 겨우 지난 시절이었습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깡통에 굵은 철사로 고리를 만들어 구걸하는 밥통을 팔목에 끼고 다니는 거지들이 거리에서 돌아다니던 때였습니다. 주로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면 남은 밥을 구걸하기 위해 ‘밥좀 줘’라는 처량한 외침을 외치던 10대의 거지 모습이 아직도 아련합니다. 하기야 깡통이라는 말이 ‘can’이라는 영어와 ‘통’이라는 우리말이 합성되어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한참 뒤에나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영화에서나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그 시절 풍경입니다. 그러니 그 시절에 ‘잘 산다는 것’은 돈을 벌어, 굶지 않고 끼니를 때우는 것, 보리밥을 먹지 않고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 사글세방을 탈출해 번듯한 내 집을 갖는, 경제적인 성공을 의미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노는 것이 마냥 즐거웠던 아이들에게 ‘너희들, 커서 보리밥 먹을래, 쌀밥 먹을래? 쌀밥 먹고 싶은 사람은 놀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곤 했습니다. 하기야 얼마나 없는 설움이 컸으면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와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세’란 가사의 노래가 있었겠습니까. 그 선생님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끼니를 거르던 시절에서 보리밥과 통일벼 시대를 거쳐, 이제는 쌀이 남아도는 ‘잘 사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잘 산다’는 말은 하지않습니다. 아니, ‘잘 산다’는 것이 ‘경제적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에도 있지만,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고 할 때, ‘잘 산다’는 것은 경제적 부 또는 부자를 의미하지는 않지요. ‘잘 산다’는 말은 이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최근 ‘커피왕’이라 불리던 40대 기업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커피업계의 ‘성공 신화’를 쓰며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지만, 식음료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며 경영난에 부딪혔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도가 되고 있습니다. 전국을 휩쓸던 유명 커피 체인점의 주인공이 어떻게 원룸 아파트의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최고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던 그 ‘기업가 정신’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벼랑 끝에 섰다는 느낌이었을까요. 1960년대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누구보다 ‘잘 사는’ 인물이었지만 그의 최후는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이 금전적이고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어떤 이들은 홀연히 산 속으로 떠나기도 합니다. 텔레비전에는 ‘속세’를 떠나 10년씩, 20년씩 산 속에서 집을 짓고 ‘자연인’이 되어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같이 외치는 것은 돈만 보고 살았던 것 때문에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얻었으며, 그 모든 것을 떠나고 나니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겠다는 것입니다. 자연이 주는 것을 먹고, 자연 속에서 욕심 없이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결국 잘 사는 것은 각자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며, 남의 시선과 타인의 재단에서 자유로울 때 성공적인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당신은 잘 살고 있나요’라는 물음에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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