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한다
이런 기억 가진 분 없습니까? 살고 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회사 사무실 층 번호를 누르는 일 말입니다. 또 반대로 회사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고 있는 아파트 층 번호를 누르는 일도 있습니다. 저도 최근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저도 모르게 회사 사무실 층 번호를 누르고는 깜짝 놀라 번호를 바꾼 적이 있습니다. 사실,집이나 회사와 관련된 정보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몸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단히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는 자신이 근무하는 사무실 층 번호를, 거주하는 곳에서는 거기에 해당하는 층 번호를 누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거, 나이가 드니까 별 일이 다 생기네. 아파트 층 번호도 제대로 기억을 못 하니 …’라는 생각보다 ‘몸의 기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아파트이든 회사 건물이든, 우리는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 십 년 동안 그곳을 드나듭니다. 처음에는 일부러, 의식적으로 숫자를 기억하는 단계가 있지만 언젠가부터는 몸이(손가락이) 기억을 해서 자동적으로 엘리베이터 층 번호를 누르게 되는 겁니다. 우리의 뇌가 의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을 ‘습관의 힘’으로 부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남성이 치매에 걸렸습니다. 부인이 24시간 ‘감시’를 해야만 할 정도로 기억을 잊어버려 외출을 할 때면 언제나 동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단독 주택은 꽤 넓은 편이어서 집안을 구석구석까지 뒤지는 건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입니다. 집안 곳곳을 뒤져도 남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동네를 살펴 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남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치매에 걸리기 전, 남편에게는 아침의 ‘루틴’이 있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고, 6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한 시간 동안 산책을 한 뒤 7시 30분에 샤워를 하고, 8시에 간단한 식사를 한 다음 8시 30분에 출근을 하는, 이런 식의 루틴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루틴을 가지고 있습니다. 휴가철에 낯선 곳으로 휴가를 간다든가, 주말에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활동을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어쩌면 평생 이런 루틴 속에 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앞서 말한 그 남성은 6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평생 가던 산책길에서 산책을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어쩌면 의식이 몸보다 ‘상위’라는 생각은
틀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의식은 어디론가 도망갔지만
몸은 자신의 집을 기억해 냈으니까요"
아마, 그 남성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 묵었다면 그는 집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도 찾지 못한 채 치매노숙자로 나머지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 남성의 의식은 뒤죽박죽되어 치매를 앓았지만 그의 몸은 산책길의 노선과 ‘집’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의식이 몸보다 ‘상위’라는 생각은 틀린 것 일지도 모릅니다. 의식은 어디론가 도망갔지만 몸은 자신의 집을 기억해냈으니까요.
습관의 힘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래서 ‘좋은 습관’을 몸에 저장해야 한다고 말하지요. 기억보다 앞서 몸이 하게 하는 행동들, 즉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마셔야 의식이 활동을 시작한다든가 하는 것처럼 하루에 책을 50페이지 이상 읽는다든가, 운동을 한 시간씩 한다든가, 일주일에 봉사활동을 3시간씩 한다든가 하는, 습관을 몸에 기억시키도록 해야한다는 겁니다. 습관이 모여 그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에도 습관의 힘을 가르치는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신라의 화랑 김유신이 얼마나 기녀의 집을 드나들었으면 그가 타던 말이 자연스럽게 그를 기녀의 집으로 이끌었고, 정신을 차린 김유신이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 말입니다. 하물며 말까지 습관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습관을 끊었던 김유신은 결국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몸이 기억하는 당신의 습관은 어떤 것입니까?
대전MBC 사장 이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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