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2일. 겨울에 내렸던 눈이 채 녹지 않은 시골 마을에 8살 유지아 군이 부모님 손을 잡고 첫 등굣길에 나섰습니다. 동네 형과 누나이자 학교 선배인 전교생 8명이 유지아 군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동네 어르신들도 선물과 장학금을 전달하며 첫 출발을 응원합니다. 단 한 명을 위한 입학식.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이웃인 부여 충화초등학교 이야기입니다.
사라지는 것은 학교만이 아니다
95년 전통을 지닌 부여 충화초등학교. 그러나 이 학교는 안타깝게도 곧 문을 닫을 지도 모릅니다. 올해 초부터 교육부의 ‘적정 규모 학교 육성 정책’, 이른바 학교 통폐합 정책에서 통폐합 기준이 보다 강화됐기 때문이죠. 충화초등학교가 없어지면 학생들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학교로 전학가야 합니다. 학교가 없으니 아이들도 없어지고, 농촌으로 오는 사람도 줄어들 겁니다. 그런데 사라지는 것이 이게 전부일까요?
정부는 소규모 학교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고자 학교 통폐합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1982년부터 진행된 소규모 학교 통폐합으로 2010년까지 5,450개 교가 문을 닫거나 분교장으로 개편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학생 수가 30명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전국에 600곳에 가깝습니다. 3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는 교육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낳게 되죠. 학생 수가 적어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하기 어렵고, 적은 수의 학생에게 과도한 비용이 투입됩니다. 더 많은 학생에게 투입되어야 할 비용을 고루 배분하지 못하는 불공정도 초래해 피할 수 없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강화된 기준(면·도서벽지 60명 이하, 읍 지역은 초등 120명 이하·중등 180명 이하, 도시지역은 초등 240명 이하·중등 300명 이하)으로 전국 학교 1만1천여 곳 가운데 10%가 넘는 1,750 곳이 통폐합 대상입니다. 충남의 경우 전체 학교의 40% 가량이 통폐합 대상이고, 강원도와 전라북도 등은 절반 가까운 학교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대부분 농어촌에 자리한 학교입니다. 입학생이 한 명도 없어서 입학식과 졸업식조차 열지 못하는 학교가 늘고 있습니다. 경제 논리 아래 균등한 교육 기회가 사라지면서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점차 저물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에서 희망을 찾다
작은 학교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학교를 줄이는 정책이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정책을 이겨낼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 느끼는 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과열된 입시 전쟁으로 우리 아이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줄 세우기와 획일화된 교육은 점점 아이들의 창의력을 해치고 있습니다. 치열한 도시 교육에 지친 아이들이 향한 곳, 바로 시골입니다.
강원도교육청은 지난 2013년부터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전체 학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작은 학교 희망 만들기’에 동참한 68개 학교 학생 수는 지난 2년 사이 7.7% 증가했습니다. 지난해 통폐합 위기에 처했던 학교 6곳은 적정 규모 학교로 자생력을 키웠습니다.
비결은 1대 1 맞춤 교육과 특성화 교육입니다. 현재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전국 평균 약 17명, 반면, 작은 학교는 과외 수준과 다름없습니다. 특기와 개성을 살린 교육이 가능합니다. 교육 뿐 아니라 생활까지 밀착형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진한 학생도 끝까지 끌고 가며 인성과 학력을 함께 키우고 있습니다. 통폐합 대상으로만 여겼던 소규모 학교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의 강점을 살리다
전인교육의 대명사로 꼽히는 발도르프 학교. 약 100년 전, 독일에서 시작된 교육 방식으로 ‘개별 학생을 고려한 전인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학생 간에 우열을 가리지 않고 개개인의 성장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데, 학생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작은 학교에서만 가능한 교육법이죠.
일본 47개 지자체 가운데 1인당 소득 42위의 작은 농촌 마을 아키타 현. 하지만, 아키타 현은 지난 2007년부터 일본 학력테스트에서 줄곧 1위를 지켜왔습니다. 1수업 1교사의 고정관념을 깨고 두 명 이상의 교사가 학생 한 명 한 명을 교육합니다. 공부만 강요하지 않고 독서와 토론, 가정학습 등 자발적 학습 참여를 유도합니다. 학생 89.3%가 ‘학교가 즐겁다’고 답할 정도로 학생 만족도가 높습니다. 학생이 공부를 즐기게 되면서 학력 상승으로 직결된 것입니다.
학교는 마을의 역사다
학습 방법의 변화가 전부는 아닙니다. 충남 금산군 두메 산골에 자리한 상곡초등학교 역시 6년 전만 해도 학생 수가 18명에 그칠 정도로 작은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이 환경성 질환 치유에 도움을 준다는 입소문이 났습니다. 특히, 어린이 아토피 치료에 큰 효과가 나타나면서 도시에서 학생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차례 한방 족욕을 진행하고, 마을에는 이주민이 거주할 수 있는 친환경 황토집을 늘렸습니다. 현재 학생 수는 45명. 폐교 위기에서 벗어난 이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에서는 인삼과 숲 등 지역 자원을 연계한 의료관광 사업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마을의 존폐’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단지 교육의 공간이 아니라 주민 소통의 장이자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는 마을의 역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방송문화진흥회의 후원으로 제작하게 된 이번 특집을 통해 교육 기회의 균등을 떠나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도·농 격차와 시골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조명하려고 합니다. 도시에서는 모르는 시골 마을 사람들이 가진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말이죠. 상생의 방안을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일지 모릅니다.
이승섭 기자 | 보도국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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