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도소주부터 혼례식에 쓰였던 합환주까지, 술은 관혼상제와 세시풍속을 따르는 우리 삶 속에서 중요치 않았던 적이 없었다. 집에서 직접 빚는 가양주(家釀酒) 양조 문화 덕분에 술을 빚는 집마다, 지역마다 그 맛과 향이 다르다. 그래서 전통주는 그 특별한 맛과 함께 지역 문화를 전파하는 탁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올 설엔 가족 친지들이 모여 전통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는 충청의 4대 명주를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전통주 기록상 가장 오래된 한산 소곡주는 약 1500년 전 백제 왕실에서 즐겨 먹던 술로 알려졌다. 한산 소곡주는 멥쌀로 무리떡(백설기)을 쪄서 누룩과 섞어 밑술을 담그는 전통 방식을 사용한다.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가 주막에서 미나리 전과 함께 마신 소곡주 한 잔에 과거도 잊고 주저앉아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처럼 한 잔이 다음 잔을 부르는 일명 ‘앉은뱅이 술’이다.
충남 무형문화재 3호 지정된 소곡주는 대전 MBC가 2014년 제작·방영한 <특집 충청 상징>을 통해 전파를 타기도 했다. 소곡주 기능보유자이자 농림부 전통식품 명인 제19호로 지정된 우희열 씨는 “소곡주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술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전수자인 아들 나장연 씨와 소곡주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86호로 지정된 면천 두견주는 진달래(두견화) 꽃잎을 섞어 담근 술로 맛과 향이 일품이다. 천 년 전 고려 개국공신인 복지겸이 몹쓸 병에 걸렸으나 효심 지극한 딸이 담근 두견주를 먹고 나았다는 설화도 있다.
두견주는 3대 전승자인 박승규 씨가 돌연 사망하자 맥이 끊기는 위기가 있었지만 당진시가 2007년 ‘면천두견주보존회’를 설립해 두견주의 명맥을 잇고 있다. 면천두견주보존회 김현길 대표는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설립 중인 ‘두견주 전수회관’이 올 가을에 문을 열 계획”이라며 “명절 뿐 아니라 평소에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매해 4월이면 열리는 면천 진달래 민속축제에 참가하면 두견주 제조 과정 체험과 함께 달콤한 두견주 맛도 볼 수 있다.
100일에 걸쳐 술을 빚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백일주. 1989년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다. 계룡 백일주는 원래 왕실에서만 빚어지던 술이었지만 조선 인조가 반정의 일등공신인 연평 부원군 이귀의 공을 치하해 제조기법을 연안 이씨 가문에 하사, 400여 년간 가문의 비법으로 전수됐다.
계룡 백일주는 여타 전통주와 달리 고두밥 대신 죽을 쑤어 누룩과 함께 발효해 맛이 담백하면서도 향긋하다. 거기에 공주 지역에서 난 자연의 재료를 더해 향취를 더한다. 봄에 따서 말린 진달래와 가을 서리 맞은 황국, 그리고 오미자와 향긋한 솔잎 등 공주 지역에서 난 자연의 재료를 더해 향취를 더한다. 계룡 백일주는 뒤끝이 깨끗하고 신경통, 부인 냉증, 요통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다.
고종의 술로 유명한 외암 연엽주는 1990년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다. 연엽주는 예안 이씨 가문의 양조기술로 제조한 술로, 누룩에 연잎과 솔잎을 넣어 발효한 맑은 술이다. 단맛이 없고 향이 그윽해 ‘선비의 술’이라 불리기도 한다.
연엽주의 주재료인 연은 처서가 되기 전 윤기 나는 튼실한 것만 채취해 사용한다. 순하고 새큼 쌉쌀한 맛이 나는 연엽주는 술 한 잔을 차처럼 세 번 나눠 마셔야 온전히 그 향을 음미할 수 있다.
예안 이씨 문정공파 8대손인 이득선 씨의 부인 최황규 씨가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옛 방식으로 술을 빚고 있지만 술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아니기에 연엽주를 맛보고 싶다면 “술 맛 한 번 보고 싶다”고 정중히 청해야 한다.
안시언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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