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20년, 결혼 후 미국에 와서 교사 생활을 한 지는 16년이 되어간다. 이곳 학교의 여름방학은 3개월 정도로 길다.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자기계발을 하거나 가을에 시작되는 새학기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나 역시 이런 일들로 긴 여름방학을 보내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남들이 하지 않는 소소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즈음에 백화점이나 마켓의 많은 상품들이 세일에 들어가는데, 그중에는 식물도 포함된다. 일년생, 다년생 꽃이며 유실수들이 마지막 세일을 한다. 내가 사는 캔자스의 여름은 너무 덥고 습기가 많아 여름이 되면 시들시들해진 채로 버려지는 식물들이 쌓여간다. 이때부터 나의 미션은 시작된다. 해마다 봄이 되면 중부지역의 긴 겨울에 지친 사람들이 들뜬 마음에 봄맞이 ‘식물쇼핑’에 나서는데 나의 경우에는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7월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불과 몇 백 원의 싼값에 원하는 식물을 살 수 있다. 때로는 조금 더 시들해진 꽃나무들을 쓰레기통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나의 이 미션에는 중학생인 딸과 고등학생인 아들도 동참하는데 온갖 협박과 아부를 동원해야 겨우 협조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쓰레기통에 빠지지 않게 다리를 잡아 주거나 고르고 고른 꽃나무를 차에 함께 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엄마의 미션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강제로 참여해야만 했던 둘째 미아는 이젠 노골적으로 “I hate plants.”라고 말하며 엄마의 미션에 불평을 하기도 한다. 어렸을 땐 죽어가는 식물들이 불쌍하다며 꽃나무에 뽀뽀까지 해주던 아이였는데 사춘기이다 보니 버려진 식물들을 주워온다는 게 좀 부끄럽게 느껴지나 보다.
사실 이렇게 거의 생명의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은 식물을 살리기 10분위해 투자되는 수고와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수도세가 비싼 이곳에서는 시든 식물을 살려내기 위한 물 값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식물영양제, 영양 토양 등에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차라리 생생한 식물을 구입하는 것이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다. 하지만 난 이 미션을 멈출 수가 없다. 한여름에 무더기로 처분당하는 식물이나 쓰레기통에 무참히 버려지는 식물에서 발견하는 생명의 희망과 기대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더 많은 식물들을 구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나의 이런 태도는 남편과 함께 가난한 유학생활을 하던 때 생겨난 것 같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조금이라도 싼 물건들을 찾아다녀야 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 그 시절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30이 코앞인 나이에 당시 결혼을 앞두고 정착하려던 안이한 나를 격려하여 대학 캠퍼스로 돌아가게 한 애들 아빠가 아니었다면 난 내 잠재력과 숨어있는 가능성을 살리지 못하고 묻어버렸을 것이다. 그때의 내 상황이 시들어가는 식물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이상스레 흡사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교사가 되어서도 어려운 생활환경 등으로 기가 죽어있는 아이들에게 더 눈길이 간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살려낸 식물들은 생명력이 강하고 색깔도 유난히 예쁘다. 말라죽어가던 식물들이 작지만 싱싱한 어린잎을 살포시 내놓을 때의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비록 꺼져가는 생명이라도 누군가 관심을 가진다면 그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 집 마당에는 시들어가던 식물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 생명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오늘도 물을 흠뻑 주고 들어오면서 생각한다. 누구와의 약속도 아니지만 나의 이 미션을 끝까지 수행하겠노라고.
토피카 쟈다인 초중학교 교사 박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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