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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사모를 만나다

대전MBC 2017. 9. 1. 15:35

지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1996년 이후 18년 만에 산수화 작품의 전시회가 개최됐다. 《구름과 산 - 조평휘》展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현대미술사 연구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기획된 한국현대미술작가 시리즈의 첫전시회로, 산수화 분야의 원로작가 조평휘 교수(趙平彙, 1932~)의 60년간의 작품세계와 화력(畵歷)을 조망해보는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조평휘 교수는 1977년부터 1999년 정년까지 목원대학교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다.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인천으로 내려온 후, 서울대학교 중등교원양성소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 1897~ 1972)과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3~2001)에게 동양화를 배웠다. 대학 졸업 후 그의 행보는 우리나라 화단의 변화와 궤적을 같이하게 되는데, 1950~60년대 추상의 모색, 1970~80년대 산수화의 유행을 지나고, 산수화 붐의 열기가 식은 1990년대부터 그의 행보는 화단의 흐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신의 산수화 양식으로 더욱 전념한다. 그의 산수화는 70대 나이에 절정기를 이루는데, 이 시기에 그는 장엄한 ‘운산산수(雲山山水)’라고 하는 역동성에 방점을 찍은 독자적인 양식을 창출하게 된다.


올해로 33년을 맞은 금강미술대전의 초창기인 1987~1990년에 개최했던 아름다운 금강전(錦江展) 시절부터 대전MBC의 미술문화 행사에 커다란 도움을 준 조평휘 교수는 여름의 폭염 속에서도 그림 작업에 전념하며 화실을 열기로 채우고 계셨다.


“교수님의 산수화 그림에 대한 설명을 말씀해주시죠?”


“저는 평생을 일관되게 수묵산수를 그려온 작가입니다. 제 몸이 작아서인지 대형 작업에 대한 열정이 많습니다. 대관산수(大觀山水)를 거대한 대작 위주로 그려왔지만 주제에 따라서 폭포와 계곡도 그려냅니다. 거친 산세를 따라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산의 느낌마다 각기 다른 정감으로 그려지고 물에 대한 다양한 사유와 철학도 함께 불러옵니다. 운보 김기창 선생께서는 제자에게 추상작업을 권하셨어요.


하지만 1960년 이후에 추상의 모색에서 전통 산수화의 추구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동양화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서양적인 작업을 하면서 갈등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서양화를 뒤따라가는 것보다 전통에 대한 탐구에 깊이를 더하는 것에서 의의를 찾고 전통으로의 회귀라고 하는 시간의 역행을 고집스럽게 걸어왔습니다.”


우리말에서 80세(歲)를 일컬을 때 일반적으로 구어(口語)로는 여든 살이라 하고, 문어(文語)로는 팔순(八旬)으로 표현하는데, 가끔 어른의 나이를 밝힐 때는 흔히 별칭을 산수(傘壽)라고도 한다. 우연하게도 조평휘 교수의 산수화는 여든 중반이 되어 바라보는 산수(山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종심(從心)의 시간을 지나 팔순에 바라보는 강렬한 산수의 웅장함은 작가의 강렬한 열망과 함께 산과 계곡에 피어난 물안개의 그윽함이 어우러져 인생에 대한 깊은 반추(反芻)의 의미를 느

끼게 한다.


“현대미술의 길을 걷는 후학들에게 권하는 말씀이 있다면?”


“그림의 기교와 기법으로 묘사해내는 표현은 요즘 후학들이 더욱 뛰어납니다. 하지만 정상에서 만나는 그림은 철학에서 만납니다. 저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는 분단의 고통과 역사 속의 시련들을 경험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소설가입니다. 21세기 아티스트는 회화의 기법을 완성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며 책을 읽고 연마하고 체험하며 기(氣)의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또한 방송과 언론에서도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신인작가와 예술인들을 발굴하고 많은 관심과 정성으로 북돋워주어야 합니

다. 문화는 그 나라의 진정한 힘입니다.”


조평휘 교수의 화실 방문을 마치고 나서는데 하늘은 갑자기 쏟아지던 폭우도 멈추고 여름 뙤약볕 속에 더욱 큰 먹구름을 휘감고 있었다.


이광원 부국장 / 사업국 광고부장